노을속에서 화음을 줍다…거제도
거제도는 또다른 땅끝이다. 아득하고 멀다. 고개를 넘고 터널을 지나 달리고 달려야 거제도에 닿는다. 버겁고 힘들어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여행길이지만 그만큼 곱고 아름답다. 거제도는 결코 한 눈에 볼 수 있는 섬은 아니다.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 해안선만 900리에 달한다.
해금강을 찾았다. 해금강은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노자산(560ｍ)이 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갈곶해안의 끝이다. 산줄기가 삐죽 튀어나와 바다를 앞두고 직각으로 꺾였다. 바로 앞에 갈도와 함께 크고 작은 바위들이 창처럼 서있다. 돛대바위, 거북바위, 미륵바위, 신랑각시바위, 거북바위, 사자바위가 해금강 앞에 흩어져 있다.
‘금강’이란 이름에는 거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바윗돌 하나도 무르지 않고 단단하며 날카로운 것을 상징한다. 하다못해 나무도 단단한 것을 금강송이라고 한다. 해금강도 마찬가지. 서남해안의 개펄처럼 바다와 뭍이 스펀지처럼 아는 듯 모르는 듯 스며들지 않고 칼처럼 나뉘어 있다. 푸르디 푸른 바다와 검은 절벽해안이 마주하고 있다.
뿌리를 박고 사는 주민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자연은 척박할수록 아름답다. 해금강도 그렇다. 바람에 내몰린 파도는 쉴 새 없이 절벽에 부딪힌다. 차가운 바람 속에 바윗덩어리들이 수만년을 버텨왔다. 관광객들은 한 시간만이라도 바람을 맞고 있으면 피부도 석류처럼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런 바다 속에 새벽부터 고깃배가 떠있다. 물고기 한 상자라도 건지기 위해 시린 바다와 싸우는 어부들에게서 희망이 보인다.
동쪽을 향해 뻗어 있는 해금강 해변은 일출이 유명하다. 10여년 전에는 가장 아름다운 일출해안 중 하나로 꼽혔다. TV와 관광사진전에도 어김없이 나왔다. 그러하나 일출명소도 유행을 타는지라 어느 순간부터 정동진이나 왜목마을의 그늘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해금강 일출은 여전히 화려하다. 석류나 동백처럼 붉고 곱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전설도 있다. 진시황이 서불이란 사자에게 남녀 각 500명을 딸려 불로초를 구하러 보냈다. 서불이 소매물도를 지나 서귀포로 가는 길에 거제도에도 들렀다고 한다. 해금강 절벽에도 제주 정방폭포와 같이 서불과차(徐불過此)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해금강 남쪽에는 여차해변이 있다. 여차마을은 몽돌포구다. 포구는 작고 초라하다. 어촌은 작고 조그마할수록 아름답다. 방파제가 수백ｍ를 뻗어나가 있고, 부둣가에 쨍쨍거리는 나이트클럽이 있는 어항은 외려 눈길조차 주기 싫다. 이런 바닷가에서는 물질조차 할 수 없는 늙은 어부들이 바다를 향해 보고만 있어도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마을 뒤편 대포마을 가는 길에서 보면 해안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섬들이 흩어져 있는데 소병대도와 대병대도다. 섬이라기보다 암초에 가깝다.
동쪽 해안길을 타면 학동 몽돌해변으로 이어진다. 해안도로도 파도의 리듬을 탄다. 도로는 바다를 향해 나갔다가 파도에 밀리듯 산을 파고 든다. 물이랑처럼 오르막 내리막도 있다. 바다만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을 길이지만 숲도 아름답다.
동백이란 나무는 수백년을 묵어도 높이 자랄 줄 모르고 옆으로 퍼질 줄만 안다. 해안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자라서 그렇다. 학동 동백숲도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숲이다.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차를 세우고 들여다보면 나무들이 굵고 힘차다. 푸르다 못해 검게 윤이 나는 이파리와 붉은 동백이 대조를 이룬다. 동백숲에는 천연기념물 204호 팔색조가 산다고 한다. 사전에는 ‘날개는 녹색, 어깨와 위 꽁지깃은 코발트색(남색), 아래 꽁지는 검정색, 아랫배는 진홍색, 정수리는 갈색, 목은 흰색’이라고 쓰여 있다. 최근에는 보았다는 사람이 없어 이미 전설의 새가 돼 버렸다. 대신 동박새는 볼 수 있다. 동박새는 동백꽃잎에 부리를 대고 꿀을 먹고 사는 새다. 새끼손가락만한 작은 새가 꽃속에서 꿀을 빠는 모습은 곱고 아름답다.
학동의 몽돌해변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몽돌해안이다. 거제도 내에 있는 해수욕장만 40여개. 이중 절반이 넘는 20여개가 몽돌밭이다. 파도와 바람은 산들을 거칠게 깎아 해금강을 만들어놓고 바윗돌은 굴리고 굴려 모난 곳 하나 없는 몽돌을 만들어 놓았다. 아무리 모난 것들도 자연 앞에선 맞설 수 없다. 세월은 끝내 모난 것들을 바꿔놓고 만다. 새해엔 세상도 둥글둥글 했으면 좋겠다.
〈글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 〈사진 정지윤기자 color@kyunghyang.com 〉
등록일 : 2005-01-08 [11:57] ●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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