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7月 03日
하늘이 맑았다. 저 하늘만치 내 머리가 맑았으면 싶었다.
사동, 오르막 오르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옆집 오릿집 사장님이 아침 가게 주위로 배회하신다. 가볍게 눈인사했다. 가게 문 열고 케냐로 드립을 따끈하게 내렸다. 옆집 사장님께 서비스로 한잔 드렸다. 오릿집 처음 문 열 때 AI 파동으로 약 1억 정도의 손실을 보아가며 가게를 유지했다며 한 말씀 주신다. 거기다가 세월호 사건과 올해 메르스 병원균에도 지금껏 버티는 힘은 그나마 시간이었다. 이제는 삼 년의 세월을 겪으니 단골도 쌓였으며 주위 인맥 다지며 이끌어 왔던 경영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집에 사모님과 사장님은 각종 모임의 회장과 단체장을 여러 겸하고 있어 가게를 알리는데도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며 한 말씀 주셨다.
예지와 배 선생 뵙고 나는 화원으로 곧장 달렸다. 병원 점장님 소개가 있었다. 커피 교육받고자 미리 상담도 있었지만, 오늘은 인수한 가게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다. 사동에서 화원에 자리한 ‘에셀플라워 카페’까지는 약 30분 거리였다. 여기서 화원까지는 아득한 거리다. 하지만 터널이 뚫리고 나니 마치 여기서 청도 가는 것보다 더 빠르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멀다고 느끼는 것은 그전의 내가 갖는 고정관념이 틀에 잡혀 있음이다. 가게에 놓인 기계는 출처가 불분명했고 그라인더는 그나마 유명한 메조였다. 문제는 기계에 전기 넣어도 열이 오르지 않아 조금 심각했다. 우리 기계가 아니라서 나는 함부로 만질 수 없었다. 주인장은 꽃과 화단과 조형물에 일가견이 있으며 전문가다. 가게 정문에 내 건 잔 모양의 조형물이 걸려 있었는데 만드는 방법을 이야기해주신다. 모든 것은 스티로폼이다. 모형을 잡고 거기다가 어떤 물질을 부으면 굳어서 모양이 이루어진다. 마치 건물에 모형을 잡을 때 스티로폼을 많이 쓰듯이 꼭 그것 한가지다. 언젠가 조감도에 조형물 할 때가 있을지도 몰라, 나중에 도움을 청할 때가 있지 않겠나 싶다. 약 한 시간 가까이 개점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거리가 멀지만, 꼭 우리 커피를 쓰고 싶다며 말씀 주시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 일 보고 본부로 가려고 차에 탔다. 오늘 딴 거라며 노란 참외를 한 상자 실어 주신다. 받지 않으려고 구태여 마다했지만 마 가져가 드시라며 싣는다. 이 순간 알게 모르게 믿음과 정이 생겼다. 거리가 그리 멀지만도 않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는지! 그것뿐만 아니었다. 점심시간이라 점심 한 끼 하고 가시라며 얘기하셨지만, 점심 잘 먹지 않는다고만 얘기하니 ‘빵과 우유’를 사다 주시는 거 아닌가! 아주 미안했다.
맏이와 대화 나누다가 ‘준아 아빠 또 책 냈단다.’, ‘알아요. 책상 위에 있던데요.’, ‘우리 아들 준이는 어떻게 생각해?’, ‘좋아요. 아빠만의 취미가 있는 건 괜찮아요.’,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돈 많이 벌면 되잖아요.’ 아들 녀석은 어떻게 생각하나 물었다. 의외였다. 집안 살림은 궁색하다만 여러 사정을 보지 않아도 아들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은 이해한다. 대답 시원스레 하는 것은 기특하지만 그래도 공부는 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날은 밥 먹다가 맏이에게 한마디 했다. ‘준아 아빠는 너 만한 나이 때 반에서 거의 최상위였다. 너는 어찌 뒤에서 최상위냐’, ‘아빠 공부가 전부는 아니에요.’, ‘그래도 책은 좀 보며 살자!’ 키가 부쩍 큰 아이다.
우리는 대학이 전부 인양 공부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니 굳이 대학이 필요할까 하는 회의감도 영 없지는 않다. 나의 일을 어떻게 선택하며 그 시장에 내 의지를 어떻게 심으며 어떻게 나의 주위를 만들어 가느냐는 것이다. 예전은 학교 졸업하면 취업으로 나서는 데 좋은 직장은 여타 가릴 것 없이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대기업도 안전한 철가방은 아니다. 경쟁에 예외가 없으니 상사와 거래처와 경쟁업체에 짓눌려 살아가는 마당이다. 그러니 위험한 것은 다른 직업에 다를 바 없는 것이 된다. 일인 기업가, 나만의 직종, 나의 능력으로 작은 사회나마 만들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 어떤 생존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재능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인문을 알고 사회를 알고 그 보는 시각을 제대로 갖췄다면 그리 걱정할 이유가 있을까! 아들에게 늘 한마디 한다. 책은 꼭 좀 읽자. 읽어야 공간지각능력을 갖추며 그러면 현실이 파악되며 미래를 예상하는 생각의 깊이가 깊어지니 나를 일깨우는 데 다른 무엇도 이것만 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갈치를 샀다. 내일이 제사인데 어물시장에 가서 미리 탐색이라도 한 걸까! 다른 거는 없고 갈치만 달랑 사 왔다. 아침에 냄비에다가 넣고 맛나게 지졌다. 늘 함께 먹는 밥상이지만, 꼭 외식 나온 모양으로 한 숟가락씩 먹었다. 갈치 한 마리 꽤 한다는 아내의 말에 제주도가 생각나고 선생님이 스쳐 지나간다. 갈치 찌개 놓고 먹은 아침이었지만 속 든든했다.
아침에 먹다가 남은 찌개에 저녁을 먹으려니 밥이 없다. 아내에게 밥이 없다고 얘기하니 햇반을 사가져 온다. 뜨거운 햇반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 우리에게 진수성찬이라는 말은 찌개 하나만 있으면 된다. 김치찌개면 좋고 된장찌개면 더 좋다. 아무것도 없는 날이 십 중 팔이니 갈치 찌개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감격이다.
사동은 오 선생이 마감했다. 며칠 도울 선생의 강의에 폭 빠졌다. 오늘도 도울 선생의 강의를 들었다. |
|
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