思無邪/강영은
밥그릇 속의 저녁 해를 건져 먹던 어린 시절, 한 끼니 저녁밥을 먹이기 위해 부지깽이를 들고 나를 몰고 다니시던 어머니, 시퍼렇게 독 오른 보릿고개 한 길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보릿고개는 어머니의 몸 속에 땅꾼 목록을 새기셨는지 두 세 개의 머리를 단 뱀들이 배 위에 우글거렸습니다 묵정밭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밭에는 말라 비틀어진 보리 쭉정이가 자라고 있었지만 허기진 뱀 새끼들,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메두사의 머리*가 이리저리 밭고랑을 누비던 그날 이후, 달빛의 푸른 피가 똑똑, 어머니의 혈관 속으로 수혈되고 있었지만 입술과 혀가 말라붙고 오장육부가 협착한 저녁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달빛이 새겨놓은 무늬, 독니에 찔려 화들짝 놀란 밤이 나를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신전인 어머니, 아픈 천궁도를 더듬는 밤이면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임종의 몸 위로 엎어졌던 검은 머리채, 출렁이는 물뱀 좌가 보입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제가, 제가, 메두사였어요)
*메두사의 머리 : 간경변증 등으로 배꼽 주변의 정맥이 두드러지게 확장되고 불거져 있는 상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메두사의 머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으악새 /강영은
으악새 슬피 우는 종결형의 가을이 매번 찾아왔으므로 나는 으악새가 호사도요, 흑꼬리도요,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울음 끝이 긴 새이름인 줄 알았다 한라산의 능선 길, 하얀 뼈마디 숨겨진 길을 걸으며 억새풀의 울음소리를 잠시 들은 적은 있지만 내 몸의 깃털들 빠져나가 바람에 나부끼는 유목의 가을, 능선의 목울대를 조율하는 으악새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生에 더 오를 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농약 탄 막걸리를 목구멍에 들이 부었다는 작은 외삼촌, 한라산 중턱에 무덤 한 채 세운 그를 만나러 앞 오름 지나던 그날 차창 너머 햇빛에 머리 푼 으악새, 출렁이는 몸짓이 뼈만 남은 삼촌의 손가락 같았다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삼촌의 아으, 희디 흰 손가락, 그날 이후 손가락만 남아 손가락이 입이 된 새를 사랑하게 되었다 으악새 둥지를 내 몸에 들였다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강영은
일요일 오후면 나는 즐거운 양말, 랄라 점묘법 댄스를 추며 그랑드자트 섬으로 날아갔지. 그곳에서 나는 꽃 한 송이 피워낼 줄 모르는 엄마의 꽃무늬 양산을 펴드는 대신 엄마가 깜짝 놀랄 멋진 우산과 데이트 했지. 커다란 박쥐우산 속에서 뾰족한 턱을 앞으로 내민 조금은 거만한 남자와 입을 맞추며 엄마를 버리는 연습을 했지.
멀리 가지는 말아라, 멀리 가려면 눈에 안 보이는 곳까지 아주 가거라, 노을이 엄마를 붉게 물들일 때까지 그랑드자트섬의 푸른 잔디밭을 독식했지. 슬픔의 근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천국의 어린 양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냥 슬픔에 길들여진 양 한 마리를 몰고 다니며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 나온 기족과 갓 태어난 유모차에게 안녕하세요 저 슬픔이에요, 꼬박꼬박 인사도 했지.
하지만 나는 그랑드자트로 간 게 아니었어 엄마가 하늘과 씨름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액자 속에 들어 있는 일요일 오후, 얘야 이 세상에 그랑드자트는 없단다 저 하늘나라에나 있을까, 하늘 저켠의 섬에 닿은 엄마, 자꾸 종소리를 울려대는데 내 안의 길 잃은 새끼 양 한 마리 묻지
엄마, 나 몇 세기 후에 돌아가게 될까?
*조루즈 쇠라 의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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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