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와 망초꽃
심언주
하늘이 더 가까운 황소
언덕길을 넘는 황소
뿔 끝에 뚝뚝 떨어지는 구름
황톳길 적실 때
언덕배기 모여 앉은 망초꽃들은
우우 소 울음을 대신 울었다.
송아지처럼
아버지는 황소 곁을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바람은 나란히 찍힌 발자국을
따라다니며 지우고
소복 차림을 한 망초꽃들이
언덕길을 뒤따른다.
멀리만
쳐다보더니
엎드린 들풀들의 무동을 타고
그 먼 곳으로
황소가 가고 있다.
흑백 필름 같은 두 눈이
몇 번이고 내 눈이랑 맞부딪친다.
멀어져도 자꾸만 맞부딪친다.
언덕꼭대기로
가물가물 뿔 두 개가 사라진다.
충남 아산 출생
2004년 <현대시학>에 '예감'외 4편으로 등단
2007년 시집 <4월아, 미안하다> 민음사
'시류' 동인으로 활동중
시인 관련 기사
고 김춘수 시인의 마지막 제자 심언주 시집 `4월아, 미안하다` [중앙일보]
아득한 여운을 노래하네
'국화 지천이다/주인은 안쪽에서/얼굴만 빠끔히 내밀고 있다./눈짓으로 국화를 가리킨다./공작이 되려나,/얼굴을 빙 둘러 국화 꽃잎이다./날아오르려나,/깃털 같은 국화를 그에게 건넨다./향 한 개비를 꽂는다./한숨 짧게 내쉬며 갓 태어난 향 연기가 사라진다.//밥 한 그릇 다 비워도/주인은 안 나오고'
'국화 화원'이란 시의 앞 두 연이다. 심언주(45.사진)의 첫 시집 '4월아, 미안하다'(민음사)에서 찾았다. 시는 어느 빈소의 풍경을, 복받친 가슴 애써 누르며 묘사하고 있다. 슬프지만, 시인은 좀체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마도 시인은 고인과 잘 아는 사이였나 보다. 국화에 둘러싸여 저 안쪽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주인, 밥 한 그릇 다 비워도 나오지 않는단다.
시는 2004년 11월 29일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날, 한국 문학은 큰 별 하나를 잃었다. '꽃의 시인'대여(大餘) 김춘수(1922~2004)다.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시인은, 대여가 마지막으로 등단시킨 제자 심언주이고.
"2004년 봄 선생님이 원고 좀 보자고 해서 갖다 드렸더니 '현대시학' 4월호에 발표를 하셨더라고요.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등단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넉 달 뒤 선생님이 쓰러지셨고요. 마지막 제자란 이유로 영결식 조시(弔詩)도 제가 썼지요."
'누운 채 눈꽃 흩뿌리는 둑길을 가며 무어라 골똘히 시를 쓰시네요./어리석게도 우주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 받아 적지 못합니다'고 시작되는 조시 '아득함과의 통화'는 영결식 뒤에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 돌아간 스승에게 바치는 마지막 제자의 시에서 스승의 시풍이 제법 묻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씨는 이번 시집에 조시를 싣지 않았다. 조시도 말하자면, 목적시여서였다. 그렇다고 스승을 잊어버린 건 아니다.
"선생님을 기리는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선생님을 잊은 건 아니죠. 제 시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정말 대여의 무심한 듯한, 하나 여운 그윽한 시편들이 속속 떠오른다. 한 행짜리 시 '섬'이 유독 그랬다.
'고개 들어야 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2007.04.10 04:36 입력 / 2007.04.10 07: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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