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진 문 / 엄원태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기형도, 빈집
1
그의 시가 만들어 놓은, 컴컴한 방에 들어간다
그가 죽었으므로, 그의 단 하나뿐인 성채는
무너진다, 박쥐가 이미 점령한 곳, 거미줄을 걷으면
묻어나는 폐허의 향기, 별안간 입이 마른다
손을 뻗어, 벽을 만져 본다
그가, 죽었다, 딱딱하다
출구를 찾거나, 조그만 窓이라도 낼 때까지,
더듬거리는 손끝은 시리다,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손을 내려다 보니, 찬손이 희다, 아아, 쓰러......
진다, 나비처럼 비칠대며, 어떤 내부 쪽으로
빨려들듯 컴컴하게,
2
그것을
예감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어둠에 접수되었고, 길은 아직도 자국눈에 덮였으며
아무도 그것을 밟지 않았다, 너무도 이른
새벽이었으므로, 薄明이 추웠다, 부스스
몸을 추스리는 순간, 마른 고드름들이
온몸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이것은
現實인가, 玄室인가, 고요 속에 시간만이
켜켜이 쌓이고, 아름답던 언어의 부장품들
시간에 스며들어, 형체 없이 사그라져 버릴, 무거운 침묵을
지켜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지친 잠깐의 휴식이거나
적막의, 산책을 나간 사이일지도 모르므로,
언젠가, 그때도 강은
안개에 묶여 있을 것이고, 긴 다리 위에서
외투깃을 세운 그를 스쳐 지나도,
아무도 미처 그가 누군지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를 일
1955년 대구 출생
1990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침엽수림에서> <소음에 대한 보고> <물방울무덤>등
1991년 <대구시협상> 수상
2007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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