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 이정록
보일러를 녹이려고 옥상에 오른다
하루 내내 이가 시리도록 일한 빨래집게들 . 서걱거리는 옷가지들을
다 건네주고 빨렛줄 한가운데 모여 있다. 빨랫줄에도 아랫목이 있나?
오목하게 모두 모여 찬바람을 비끼고 있다. 우리들도 체온이 있다고,
우리들도 한 가족이라고 언 뼈를 부딱뜨리며 겨울밤을 건너가고 있다.
손전등을 밤하늘에 비춘다. 어리둥절 비틀거리던 기둥 하나가 허공에
선다. 그 불기둥을 따라 추운 별들이 내려온다. 내가 저 보석지붕을 받
들고 선 주춧돌이다.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지. 한 사내가
쓴 웃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방 한 가운데 작은 이불 속에도 빨래집게 같은 다리들이, 없는 아랫
목을 만들고 있다.
별이 참 차갑지? 내 시린 무릎을 디민다.
별꼴이야.
별꼴이라고? 그렇지. 가족이 무릎을 맞대면 별꼴이 되지.
그 누가 빨래집게들의 가슴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채워 줬나? 빨래집게는
그 팽팽한 철사목걸이의 힘으로 이 악물고 일만 하나? 깊은 밤 한 사내가
누군가의 텅 빈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추워 죽겠는데 별꼴이야. 끄응, 별꼴이 돌아눕는다. 기름 떨어진 보일러처
럼, 거칠게 바람이 빠진다.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 한문교육과를 졸업했다.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혈거시대'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주요 시집으로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의자』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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