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花역을 지나며 / 이성렬
외진 간이역의
어느 개찰구에서 우리는
가끔 때 이른 이별과
꺼져 가는 가로등을 슬퍼하였다
늦가을의 보폭 사이로 끼어드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헤집으며
젖은 바람이 들판에서
온통 헤매이기도 하였으며
할 말을 다해 버린 강물처럼
기진한 억새풀들이 찾아와
그런 날에는 서리꽃 몇 송이가
투명한 철로를 따라 흘러갔다
내 회한의 높이로 날아드는 새들은
녹슨 그릇과 숯가루 위에
맑은 눈물을 기꺼이 뿌렸고
고매한 교회당 종지기의
일기를 엿보기도 하였다
오, 어느 순간 표정을 바꾸는 낙엽을
우리는 가장 두려워했다
낮게 깔린 늙은 조각구름들이
저녁의 투망을 가로막을 때
우리의 분신인 죽음은 한 계절을
고집스럽게 초막에서 칩거하였다
흩어진 침대와 설익은 밥풀들마저
때로는 허물어진 집의 내력보다도
더 귀중한 위안이었다
어둠은 진실로 어두운가
새털구름은 진정으로 가벼운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밤은 우리에게 속삭였지만
자정의 검은 기적소리는 길 위에서 태어나
누구의 잠도 깨우지 않고
1955년 서울에서 출생. 서울대학교 및 KAIST를 졸업.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박사학위 수여받음.
시집으로 『여행지에서 얻은 몇 개의 단서』와 『비밀요원』(서정시학, 2007) 가 있음.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이며 웹진 『시인광장』편집위원으로 활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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