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 문인수
만년필로, 새파란 잉크로 정성들여 쓴
글씨 한 줄이, 두 줄이, 석 줄이, 넉 줄이…… 무슨 구령이라도 붙은 것 같
다. 글씨가 글씨의 꼬리를 물고, 낱말이 낱말의 꼬리를 물고, 의미가 의미의
꼬리를 물고 속 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리를 놓고, 다리를 건너 생목 울타리를 지나 한 판,
또 한 판,
눈 아래 빽빽하게 번져 잘 우거진다.
……………고맙다는 인사가 왔다.
전화가 온 게 아니라, 컴퓨터 메일이나 핸드폰 문자가 아니라 만년필로,
새파란 잉크로 정성들여 쓴
16절지, 한지 두 장짜리 편지가 왔다. 파릇파릇 풋내 나는 글발, 사람의
마음도 이렇듯 잎 피는 식물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았던 엠보싱의 우리나
라 삼림,
나는 심호흡으로 천천히 숲 속으로 들어가
그 옛날의 좋은 공기를 마셔보는 것이다.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
대구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홰치는 산』,『쉬!』『배꼽』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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