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골 시편 / 김신용
-가을
개의 밥그릇에 담긴 물 위에 낙엽이 하나 떠 있다
곁의 높은 은사시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것
낙엽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표정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 같다
저 나뭇잎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먹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나뭇잎을 먹을 수 없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다
물 먹으려는데 귀찮게 구는 것을 바라보듯 쳐다볼 뿐이다
설마 은사시 나무가 개가 마실 물 위에 버들잎을 띄워주듯, 낙엽을
떨구어 준 것은 아닐 것인데
낙엽이 떨어져 버리다가 우연히 담겼을 뿐일 것인데
개는 곤혹스러운듯한 표정이기도 하다
곱게 조락의 물들어 물 위에 엷게 떠있는 나뭇잎
그 나뭇잎이, 개의 밥그릇에 담긴 물의 눈빛 같기도 해
그러니까 개의 밥그릇의 눈빛 가기도 해
산이 등 구부려 내민 발 앞에 놓인, 개의 밥그릇 같이 생긴 마을
도장골의 가을이, 너무도 포근해 보였는지
물위에 떠있는 나뭇잎을 검불이듯 주둥이로 걷어서 버리면 될터인데
개는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다
입으로 나뭇잎을 후-불어 그릇가로 띄우고는 물을 마시고 싶은듯
개는, 커다란 눈망울만 껌벅이고 있다
은사시나무가 또 하나의 잎을 떨구어 버려
개의 순한 잔등에 가만히 손얹는 가을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
2005년 제7회 천상병 문학상을 수상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개 같은 날들의 기록」「몽유 속을 걷다」「환상통」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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