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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9-10-26 10:36:08, 조회 :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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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명을 듣다 / 배한봉

공명을 듣다 / 배한봉

햇살이 산길을 넘어오는 아침
탈골하는 억새들, 음성이 청량하다
살과 피 다 버리고 뼛속까지
텅 비운 한 생애의 여백
여백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연 담고 있는 것이냐
면도날 같은 잎으로 여름
베어 눕히며 언덕 점령하던 때 지나
흰 꽃 속에 허파에 든 바람 실어
허허허허거리던 시절,
간과 쓸개 빼놓던 굽이를 돌아
비로소 세상에 풀어놓는 넉넉한 정신
바람 찬 산을 넘어온 아침이
내 얼굴을 만진다, 이제 겨우 마흔몇
넘어야 할 고개, 보내야 할 계절이
돌아오고 또 돌아와서 숨가쁜 나이
산에 올라 억새들 뼛속에서 울려나오는
깊고 맑은 공명을 듣는다
내 심중에서도 조금씩 여백이 보이고
누가 마음놓고 들어와 앉아 불어도 좋을
젓대 하나, 가슴뼈 어딘가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경남 함안 출생
1998년 《현대시 》로 등단
시집 『흑조 』『우포늪의 왁새 』『악기점 』
『잠을 두드리는 물의 노래 』
계간 <시와 생명> 편집위원
웹진 <詩鄕>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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