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 이영광
따스한 누더기의 집
마른 젖 같은 문들이 덜렁대고
빼곡히 누우면 숨소리, 安寧히 멀리 가던 집
긴긴 여름 해를 가린 집의 근심하는 입속에서,
애비는 찬물에 말아서
에미는 양푼에 막장을 비벼서
어린것들은 접시 하나씩 붙들고 앉아서
소와
돼지와
<도꾸>와도 같이,
입 하나 그릇 하나로
입 하나 그릇 하나로
한 기를 건너던 곳
뿔뿔이 산으로 돌아가는 논밭들 버려두고
그 많던 부르튼 손 배고픈 주둥이들은 다 어디 갔나
그 부산하고 앙앙거리고 우물거리던 가난은 어디에서,
눈망울이 새까만 가난의 새끼들을 낳아 기르나
더는 숨 쉬지 못한 집
철거와 개축의 세월 다 피해
몇 군데 기우다
기운 집
빈 집의 젖가슴을 열고 들어가
등을 켠다
뱃속을 희미하게 밝힌 눈 어두운 짐승이
어느 놈이 돌아왔는지도 모르면서
꿀꺽, 삼켜준다
마른 혀로 쓱쓱 핥아준다
1965년 경북 의성에서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 「빙폭」 외 9편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 직선 위에서 떨다』(창비, 2003)와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2007)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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