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b를 찾다 / 강희안
달팽이 b가 가파른 벽을 따라 기어오르고 있다. 암수 딴 몸의 가설을 짓고 또 지어 나갔다. 태생이 그리워 자모자모 수직으로만 오르는데, 그게 고작 혼선이 빚은 향기라니… 비릿한 벽의 몸이라니!
창살에 붙은 까만 젖망울에 무수한 담쟁이의 발길이 머물다 갔다. 혼자서는 무서운지 달팽이 bb가 점액질을 나누는 막다른 길목, 누군가 허공을 뒤적이며 삐뚤빼뚤 쓴 모자를 벗어 던진다
어미가 거둔 태생의 배꼽을 찾아 미끄러운 벽을 오르고 또 옳으리라. 어둠의 자식으로 기어 나와 d의 창가를 기웃댄다. 자음자음 비명을 새기면서 반투명 유리에 겔 모양의 발자국을 찍었다
달팽이 dd가 모음모음 랭보의 길을 간다. 몇 점 물방울 떨어진 시집 장정 위에 알을 슬었다. 색색의 o점을 남기고 그가 사라졌다. 자모의 회로가 뒤엉킨 머릿속에 잠시나마 구멍이 뚫렸다
그간 차마 꺼내보지 못한 모자 db를 뒤집어 행거에 걸었다. 단 한 번의 난생 설화가 그대로 머리에 씌어진 순간이다
1965년 대전에서 출생. 배재대 국문과 졸업 및 한남대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지나간 슬픔이 강물이라면』, 『거미는 몸에 산다』,
『나탈리 망세의 첼로』와 그밖에 『현대문학의 이해와 감상』,
『석정 시의 시간과 공간』, 『문학의 논리와 실제』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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