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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숯의 역사는 깊다. 약 2,600년 전부터 조상들은 숯을 생활의 지혜로 활용했다.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을 놓기 전 지반을 다지는 기초공사에 사용했는가 하면 아기가 태어난 집 문간의 금줄에 숯덩어리를 매달았다. 장을 담글 때는 불순물 제거를 위해 숯덩이 몇 개를 띄웠다. 최근에는 숯이 다양한 생활용도에서부터 약리(藥理)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드러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태백산 기슭에 위치한 영월군 상동읍 덕구리. 재래식 숯가마가 있는 마을이다. 이름하여 태백산 참숯가마. 이 숯가마의 주인은 김성필 씨로, 30년 가까이 숯장이 노릇을 해온 사람이다. 우리가 숯가마에 도착한 날은 때마침 숯을 꺼내는 날이었는데, 일꾼들이 한창 숯 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의 숯가마는 한 기의 면적이 2.5평 정도. 가마 내부의 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반원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보통 숯가마는 진흙과 화강암, 흙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쪽은 돔 모양으로 진흙을 쌓아올려 가마를 덮는다.

숯가마의 특이한 점은 굴뚝이 가마의 아랫부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가마 내부의 온도를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곳에 있는 숯가마의 내부 온도는 최고 1,300도 정도. 기온이나 기압에 따라 완전한 숯이 되는 시기가 달라질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루나 하루 반 가량 밖에서 불을 때고 5, 6일만에 꺼낸다. 숯 만드는 과정은 우선 질 좋은 나무를 구입해 가마 안에 채곡채곡 거꾸로 쌓고, 가마 문을 닫아 밀봉시킨다. 그 다음 가마에 불을 붙이고 하루 정도 불을 때고 나면 가마 안에서 나무가 자체 발화를 시작한다. 이때 공기구멍을 통해 바람 조정을 잘 해야 한다. 이렇게 탄화의 과정을 6일 정도 거치고 나서 숯을 꺼내 하루 정도 식히면 완전한 숯이 완성되는 것이다.

드디어 숯가마 아랫문이 열렸다. 숯가마 위쪽에 있는 불구멍을 열자 비로드처럼 까만 밤하늘에 불길이 뱀 혀처럼 널름거리며 솟구친다. 숯가마를 밀봉했던 벽돌 문을 허물어내자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불이 보석처럼 빛난다. 너울너울 춤을 추듯 불길이 황홀해 졸리던 눈이 번쩍 뜨인다. 벌겋게 달아오른 숯덩이들. 한 인부가 길다란 쇠부지깽이로 가마 안에 있는 숯을 끄집어내자 다른 두 명의 인부가 커다란 부삽으로 숯을 날라 숯가마 한켠에 마련된 드럼통을 채워간다. 예전엔 재나 모래를 덮어 불길을 껐으나 김사장은 “숯에 먼지가 끼여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며 드럼통에 넣고 두껑을 덮어 밀폐시키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하루 정도 지나면 연소된다고 한다.

영하 10도가 넘는 체감온도에도 불구하고 인부들의 얼굴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숯가마의 내부가 뜨거운지라 근처에만 가도 살이 익을 지경인데다 숯을 퍼 담은 부삽의 무게도 아무나 쉽게 들지 못할 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저녁 5시 반에 시작한 숯 나르기 작업은 자정이 가까워져서야 끝이 났다. 저녁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꼬박 6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숯은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요. 정성을 게을리하면 숯은커녕 허무만 남지. 숯이 됐다 싶으면, 자다가도 뛰쳐나와야 돼.” 김성필 씨의 말이다. 사실 숯이란 것이 불 관리를 잘못하면, 재만 남게 마련이고, 재를 남기지 않으려면 그만큼 정성스럽게 불 관리를 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으로 김씨의 아내 이영숙 씨는 “너무 고생스럽고 힘들어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하루 열두 번도 더 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끼니거리도 없을 때가 많았어요.” 그런 고생 끝에 이제는 ‘태백산 참숯가마’하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질 좋은 숯을 내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김성필 씨가 처음 숯장이의 길로 들어선 것은 횡성에 있는 숯가마의 영향이 컸다. “횡성에 숯가마가 있다 해서 가서 보니까, 굴뚝이 까꿀루 내려와 있는 게 히야 멋있드라구. 그래 시작을 했지.” 하지만 한동안 그의 숯 굽는 일은 돈벌이가 되지 않아 다른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숯 굽는 일에 신명을 다 바쳤는데, 그 끈기가 결국은 오늘날의 그를 있게 했다. 그리고 요즘에는 단지 숯을 구워내는 일에서 한층 나아가 숯베개, 냉장고 탈취제, 전자파 차단 휴대폰 고리 등 다양한 숯제품도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에 와서 숯은 더 이상 땔감만은 아니다. 쓰임새가 매우 다양해서 앞에서 말한 것들 외에도 식용 숯가루, 숯비누, 숯팬티, 축포 및 폭약용 숯, 숯종이, 숯다식, 숯장판 등 여러모로 이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숯은 굽는 방법에 따라 백탄과 검탄으로 나뉜다. 쉽게 말해 검탄은 저온에서 만들어진 숯이고, 백탄은 고온에서 만들어진 숯이다. 검탄이 불이 다 꺼진 상태에서 검은 상태로 꺼내는 반면, 백탄은 발화가 끝나 발갛게 된 상태로 꺼낸다. 하여 강도에 있어서 백탄은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이지만, 검탄은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가 나거나 부서져버린다. 그런 이유로 백탄의 이용 가치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가 생산해 내는 것은 바로 이 질 좋은 백탄이다.

태백산 참숯은 두드리면 ‘쟁그랑’ 맑은 쇳소리가 난다. 숯장이 김성필 씨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숯의 강도가 다르다”며 꾸준한 실험정신으로 참숯 제품을 고안해 내고 있다. 쪽동백나무 숯으로는 열쇠고리나 관상용 풍경(風磬)을 만들고, 참나무 숯은 재단해 냉장고 탈취용,소나무 숯으로는 약용 숯가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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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의 효능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숯이 공기를 정화시키고, 음이온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파를 흡수시키며, 습도를 조절하고, 토양 개량 효과 및 탈취 기능이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숯이 주변의 자장을 강하게 하여 어떤 물질이나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장을 형성시킨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의 숯 사용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숯 사용량의 90% 정도는 수입 숯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 매스컴의 영향으로 ‘숯바람’이 불긴 했지만, 이 또한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고 말았다. 숯에 대한 일반인의 상식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성필 씨가 아쉬워하는 점도 바로 그 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숯에 대한 외국 서적까지 공부하면서 지역민을 상대로 한 숯 강의에도 열심이다. 숯가마 앞에서뿐만 아니라 숯가마 밖에서까지 숯장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