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는 평소에 무한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사물을 접근 시켜 하나로서 다른 하나를 재현하게 하는 것이며 차이성 속에서 유사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은유정신은 투명한 현실 뒤에 감추어진 유사성의 세계를 지향하는 창조적인 정신이다.
현대시의 은유가 단순히 수사학적 차원을 넘어서 시인의 세계인식의 중요한 장치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ⅰ)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 /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
(ⅱ) ...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고// 복사꽃 두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조지훈. 승무
이들 詩에서 원관념(tenor : 비유되는 이미지)과 보조관념(vehcle : 비유하는 이미지) 혹은 직유와 은유의 형식적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과학적 세계에 있어서 상실된 시적 상상력, 그것의 작동과 방향의 깊이다. 이는 치환은유(epiphor : 모호한 원관념을 구체적인 보조관념으로 옮기는 의미론적 이동)와 병치은유(diapor : 상호 모방적 인자 없이 고립적으로 이미지들이 병치되는 것)의 문제로 연결된다.
근대세계는 불연속의 세계이다. 모든 것이 단절 파편화 된 상황에서 위의 시들은 은유정신의 회복으로 가득 차있다. 그 회복의 방향이 (ⅰ)에서는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의 공간으로 (ⅱ)에서는 세사를 초월한 고전적 여승 "별빛"의 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이 은유정신 속에서 각 이미지들은 정신적인 유사성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것이 치환 은유이다. 한편, 병치은유는 현대사회의 파편, 고립화된 측면 그 자체를 드러내므로 써 불연속 속의 세계를 비판하는 은유이다. 치환은유가 세계 속에서 동일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면 이 은유는 세계와의 대결을 통해 동일성 그 자체의 파괴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은유정신이 점점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 그 회복을 위한 몸부림은 현대시의 특정한 한 부류에만 국환 될 수는 없다.
詩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할 영역이 동일성과 유사성의 세계라면 은유정신은 모든 현대詩가 詩로서 존립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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