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가 있던 자리 / 최승철
태양의 둥근 열매, 아침은 내가 없던 사이에도 그 자리를 찾는다 꿈에선지 나는 호두나무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빛나는 중심, 나이테 같은 것들의 무게에 눌려 눈을 떴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린 햇빛들 열매로 빛났다 마을 초입에서 뭉게 구름 단단하게 뭉치며 서 있던 호두알, 腦의 형상으로 세월을 닮아 간다 집을 떠난 지 몇 년, 신호등 앞에서 장시간의 통화에 귓불이 뜨겁다 홍역을 앓던 유년의 무당 굿소리가 귀앓이처럼 들려왔다 말들과 말들은 단단한 토씨를 찾는다 내 의식 가까이 햇빛 같은 것들이 다가와 몸을 열어놓는다 호두나무를 생각하면 끊임없이 둥근 것들을 만지고 싶어 걸어서 아팠는지 아파서 걸었는지 왜 내 무의식의 고리는 球體일까 안테나를 세워 문자 메시지를 띄운다 詩의 잠언처럼 가지를 틀고 있는 호두나무, 답장 없이 둥근 하늘 속에 서 있다
1970년 전북 남원 출생
2002년 『작가세계』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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