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층나무의 잠 / 백상웅
철가죽을 뒤집어쓰고 누가 사나?
층층상회 외벽을 타고 자란 철제 계단을
텅텅, 밟고 올라 허름한 가죽을 빌려 내가 사나?
네모난 쇠가죽 속에는 팔다리를 뻗으면
지붕을 짊어지고 기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방
아래층 마당에 혼자 살던 층층나무가
난간 없는 옥상까지 근육질 팔을 불쑥 뻗고는
양철 같은 내 등허리를 북북 긁어주곤 했던 방
나날이 붉어지는 철제 계단이 못미더워서
나선형 계단처럼 자라나 내게 찾아왔을 나무,
나무 계단과 푸른 탯줄로 이어졌던 잎사귀가
새떼처럼 시커멓게 날아오르면 쓸쓸해지던 가죽
철제 계단 위에 수북하게 내려앉아
검은 잠을 자던 새의 뼈가 밟히는 소리였는지,
낡은 계단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였는지,
헷갈려서 나무의 발자국 소리까지 엿듣던 밤
철가죽에서 기어 나와 옥상에 서면
부도난 공장 굴뚝을 더디게 오르다가
등껍질을 벗어던져 버린 거북이 같은 내가 보이나?
층층나무는 기름 진 나사처럼 하늘에 박혀가고
지상의 시간도 철제 계단을 조금씩 밀어내는지,
내가 사는 옥상도 나이테처럼 퍼져나갔으면 하는 밤
방에서 목을 길게 빼고는 나는 매일 떠올랐나?
층층나무의 계단을 한 해씩 올라가면서
나는 언제까지 꿈의 천장에만 총총 박혀가야 하나?
2006년 대산대학문학상.
200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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