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의 세계적인 메카, 해 질 녘 고천암호엔 샛노란 노을을 바탕으로 수채화가 펼쳐진다. 20여만 마리의 가창오리떼가 펼치는 신묘한 군무.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고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웅웅웅웅웅'. 고천암호 방조제를 넘어 가창오리 군락에 접근하자, 난데없이 황소개구리 떼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겨울 바람에 갈대가 이는 소리와도 비슷했지만 가까이 가 보니 엄청난 수의 가창오리 떼가 일으키는 날갯짓 소리다.
날개 한 번 퍼득거려도, 물 한 모금만 마셔도 20여만 마리가 뿜어내는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연출한다. 그대로 대자연의 소리다.
실제로 작년 겨울, 영국 BBC 방송에서 '전세계 자연의 신비 50'에 선정돼 촬영해갔을 정도.
'두두두두, 투투투투' 지친 기다림 속에 드디어 대장 새가 일어선다. 일단 대장 새가 속한 무리가 일렬로 사열하듯 하늘로 날아오른다.
또 다른 무리가 솟구쳐오르는 사이 먼저 비상한 새들은 '토네이도'를 일으키듯이 공중을 빙빙 돈다. 나머지 새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호수의 새가 모두 비상하면 사위는 이제부터 '새의 전쟁'이다. 전쟁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해남철새보호모임 변남주 씨는 "멀리서
날아오르면 소총 소리처럼 들리죠, 무리를 이루어 날면 갑자기 방향을 꺾는데, 그럴 땐 태풍 소리가 납니다.
운이 좋아 내 머리 위로 날 때가 있어요. 그러면 탱크 소리가 나면서 머리 위로 물이 후두두 떨어져요. 수면에서 막 떠올랐으니까. 공포
영화를 무서워하는 여성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죠." 가창오리의 군무는 적게는 3분에서 길면 20분을 끌기도 한다. 그는
이 광경을 '자연이 주는 오르가슴'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이런 날, 이런 순간이 매일 오지는 않는다. 새들의 비상과 군무는 한결같지만 타이밍이 문제.
오리 떼가 한 곳에 정지해 있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비상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또한 시간과 방향을 잘 예측했더라도 철새가 머리 위로 날지 않으면 멀찍이 지켜볼 수밖에 없다.
보통 추운 날은 일찍 날고 따뜻한 날은 좀 늦게 난다. 날이 따뜻하면 전날 먹이를 배불리 먹어 느긋하게 떠나는 것이다. 가창오리는 낮에는
호수에서 조용히 수면을 취하고, 해가 지면 곡식 낟알을 찾아나서는 야행성 조류.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날아온 새들은 한겨울이 되면 고천암호로
남하하는데, 이때 전세계 가창오리의 95%가 모여든다.
고천암호의 탐조 지역은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마음껏 새를 쫓아다닐 수 있는 탐조객에게는 행운이지만, 이 새가 희귀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 방관하는 면도 없지 않다. 최대한 새들의 서식 환경을 해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따뜻한 옷차림도 꼭 필요하다.
:: Tips
최적 탐조 포인트 주차장에서 500m 안쪽에 있는 감시카메라 지점이 최적 탐조 포인트. 바로 앞 갈대섬은 새들의 수면 장소로,
이곳을 시발로 비상한다. 운이 좋으면 머리 위에서 군무를 펼친다.
최적 촬영 포인트 노을이 지는 방조제 수문(남서쪽)을 마주보고, 북동쪽에 삼각대를 설치한다. 그러나 북쪽이나 동쪽으로
날아간다면 촬영은 어렵다. 서쪽(진도 방면)으로 날기만을 바랄 뿐이다. |
불어라 갈대의 서정
[고천암 갈대숲]
 고천암호엔
새들의 비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후에 가면 황금빛 갈대, 역광일 때는 은빛 갈대를 만난다.
갈대숲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는 길은 마치 밀림을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한낱 갈대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천연 상태의 갯벌에서 오랫동안 자라난 갈대라, 키가 2~3m에 달한다. 이곳의 갈대는 한겨울 눈보라를 맞고도 꼿꼿이 서 있는 게 특징이다.
갈대숲 안쪽에 해마다'갈대축제'가 열렸던 곳이 있는데,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갈대숲 한가운데에 패루처럼 솟은 '솟대'가 있는데, 마법의
문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갈대숲을 따라 들어가면 사방이 단절된 고요한 자연을 만난다. 연인에게는 두말이 필요 없는 로맨틱 코스, 디카족에겐
최적의 촬영 포인트다. 그래서 겨울철 사진 동호회의 인기'출사'지역으로 손꼽힌다.
 역광을
받아 빛나는 갈대꽃이 하늘거리는 풍경은 감동 그 자체. 갈꽃이 핀 갈대밭 정경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뀐다.
막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살짝 구부러진 갈꽃 목덜미에 햇살이 얹혀 부서지면 갈대는 은빛을 발산하기에 '은갈꽃'이라 불린다.
사실 해가 뜬 날이면 어느 때에 들러도 금빛 은빛 갈대를 만난다. 호수를 둘러싼 제방과 찻길이 타원형으로 빙 둘러져 있어, 차를 타고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갈대는 황금색, 암갈색, 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다.
 고천암호반은
자동차를 타고 달려도 15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코스다. 자칫 길을 잃어버릴 정도다. 작년까지 일부 단절된 구간이 있었지만, 올해는 주변
도로를 깔끔히 정비했다.
덕분에 최근 인라인스케이트와 마라톤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광활한 간척지에 불과했던 고천암호가 남도에서 알아주는 '레저 스폿'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아스팔트 길이 21km, 제대로 된 하프 마라톤 코스다.
방조제 주차장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면 원호리, 길호리, 연곡리의 간척지를 거치게 되는데 다리와 갈대숲, 직선 코스가 어울려 천혜의 마라톤
코스를 제공한다. 요즘엔 농사철이라 오가는 차량도 드물다.
실제로 고천암호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마라톤대회, 인라인대회가 종종 열린다. 겨울에도 날이 따뜻해 아스팔트가 결빙된 날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도 남단 어디를 다녀봐도 이런 천혜의 '레저 코스'를 찾기가 힘들다.
낮에는 담수호 안에 항상 가창오리가 앉아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할 경우,철새의 서식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Tips |
고천암호 가창오리 비상 순서
1. 전조 전열을 정비한다. 흩어진 무리가 한 곳으로 집중한다. 대체로 해가 지고 서쪽 하늘에 노을이 질 무렵이다.
2. 비상 가창오리 한 무리가 일렬로 줄을 지어 비상하기 시작한다. 이때 먼저 뜬 새가 빙빙 돌기 시작하면 비상
단계다.
3. 군무 머리 위로 날아오른다면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20만 마리의 오리가 서너 집단으로 갈라진 다음,
다시 합쳐지는 환상의 군무가 펼쳐진다.
4. 이동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날아간다. 북쪽으로 날아가면 배경이 깜깜해 사진 촬영이 어렵다. 남서쪽, 즉
진도 방향에 노을을 걸치며 이동할 때 사진 촬영하기가 가장 좋다.
고천암호 레저
 마라톤
고천암호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데 드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된 고천암호 주변 도로는 약 21km. 정확히
하프 마라톤 코스다.
실제로 이 루트에서 소규모 마라톤이 여러 번 개최됐다. 겨울에도 도로가 잘 얼지 않기 때문에 겨울철 마라톤과 드라이브 코스로
그만이다.
인라인스케이트 인라인스케이트로 21km를 달리는 데 드는 시간은 불과 수십분. 겨울철에도 인라인 동호회가 개최하는
대회가 종종 열린다. 드넓은 갯벌 위로 경작지를 조성해서 직선 코스가 많다는 것도 이 코스가 인라인 동호회원에게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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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현일수, 이창곤, 변남주(자연사랑메아리)
발췌 : 애니카 라이프 >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 > 혼자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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