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03日
오전 흐렸으나 오후 꽤 맑았다. 바람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했다.
서재가 하얗게 보일 때, 늦가을 마지막 한 장 남은 잎 새와 같이, 바람은 늘 평형을 유지하는 일 없어 거저 껌처럼 서 있어도 행복한 일, 그러니까 나는 오늘 햇빛 보았다.
오전 커피 교육할 때였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를 얘기하는 도중에 앞으로 백 년 후, 커피를 직업으로 갖는 인생은 어떤 것일까! 누가 커피 교육을 할 것이며 지금의 생활상을 그때는 어떻게 비출 것인지 또 어떤 커피가 유행할 것인지 내심 궁금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이상이 살았던 생활상은 어떠했는가! 천 삼백 년 전, 칼디가 먹었던 커피는 무엇이며 프랑스대혁명을 주도했던 그 카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그러니까 커피는 커피 그대로다. 마시는 방식이 조금 다르기는 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며 커피를 두고 즐기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게 변모해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칼디가 먹었던 그 커피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 하나씩 따먹었던 나무 열매에 불과하며 근대 유럽에서 즐겼던 커피는 지식인의 머리끝을 자극하는 하나의 기폭제였다. 지금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는 대화며 유흥이며 습관이 돼 버렸다.
커피와 사업에 관한 얘기로 일관성은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교육생께서 질문이 있었다. 여기서 교육을 받고 창업해도 여기 커피 안 쓰시는 분도 있나요? 하며 물었다. 창업한 교육생이 우리 커피 100% 애용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확연히 다르겠지. 커피가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볶은 커피가 다른 상품에 비해 더 뛰어나니 쉽게 쓸 수 없는 것이 문제다.(가격과 비교하면 제품은 월등히 좋으나 시중에는 훨씬 싼 가격으로 나온 제품으로 범람하는 게 요즘 실정이다) 물론 이것도 주관적인 나의 변론에 가깝다. 하지만 일관성을 두고 십여 년 이상을 처음과 같이 볶았음이다. 하지만 경영은 이러한 믿음을 저버린 경우도 많아서 물처럼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 일반인이다. 그러다 보면 고객과 믿음을 저버리게 되며 결국 악순환으로 바뀌는데 나중은 문 닫게 된다. 어렵더라도 커피만큼은 일관성을 갖추며 더 나은 맛을 추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아직도 커피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이 일관성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커피가 뛰어난 것이 아니라 10년 이상 한 가지만을 고집한 우리의 뚝심일 게다.
점심을 본점에서 먹었다. 실습생 이 씨, 본부 서 부장이 함께했다. 강 선생께서 갈비탕 한 그릇씩 총 쏘듯 했다. 뜨끔한 한 그릇이었는데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을 수 없게 했다. 결코, 잊어서도 안 된다. 지난주 일요일이지 싶다. 송별회 가졌지만, 그 송별회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러니까 퇴사함을 무릇 강조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마지막까지 잊지 말라는 언지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새로 시작하는 커피 일까지도 내심 관심으로 지켜보아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4년 꼬박 머물다 보니 실은 오늘로서 일은 마지막이지만, 영 나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를 바라보는 눈은 함께하며 커피와 더불어 이 세계를 함께 걸어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어쩌면 매일은 아니라도 자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간 강 선생과의 일은 참으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일반 직원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상부 하달 식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로 일한 느낌이 크다. 그만큼 적극적이었으며 주도적인 경우가 많아 다툼도 잦았는데 모두 일 때문에 빚은 것이라 지나고 나니 복이었다. 아무튼, 갈비탕 한 그릇 잘 먹었다.
강 선생은 오늘도 유머감각적 표현 하나 남겼다. ‘띠리리~’ 그러니까 아마 TV, 쇼 프로그램에서나 볼 수 있는 효과음 같은 것인데 극적인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때 나오는 표현 말이다. 너무 웃겼다. ‘띠리리~’
본점에서 커피 볶았다. 케냐와 예가체프 볶았다. 압량에 쓸 커피가 없었다. 다 볶은 커피를 포장하고 일부 남은 것을 드립으로 내렸다. 맛을 보기 위함이다. 근데, 조금 과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지만 수일 내로 마신다면 꽤 괜찮겠다. 오히려 더 부드러워서 속은 꽤 편할 것이다.
압량과 사동에서 책을 읽었다. 백양의 중국사를 읽었다. 춘추전국시대를 읽는데 사마천의 사기를 생각다가 시대 순으로 써내려간 역대왕조가 조금 낯설기까지 하다. 어쩌면 시대순이 아니라 역대왕 이름을 직접 거론한 것이 낯선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제나라 환공은 이름이 ‘강소백’이었는데 환공으로 표기하지 않고 이름으로 써내려가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책의 저자 백양 선생께서 직접 거론하기도 했다. 역대 제왕들의 시호나 존호를 사용하지 않고 이름으로 적어 내려가겠다고 했다. 이는 한 사람의 인격을 더 살피는 격이 된다. 세종이니 태종이니 하면 역사의 흐름을 살피는 데는 이해가 빠를지는 모르나 한 사람의 인격을 보는 것은 조금 허술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국가를 세우고 다스리는 것도 좁게는 관리며 넓게는 경영 아니겠는가! 창업과 수성, 이 모두를 잘할 수 있다면 국가도 오랫동안 보존하여 내려오듯 일반인 사업도 그와 같다면 일을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
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