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5年 04月 19日
흐리고 비 왔다.
헐렁한 바지를 입고 운동화 신고 들어갔다. 이제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를 본다. 조폐창 지나 어느 습지대 옆, 선생님의 들판을 보며 지나간다. 철문은 늘 굳게 닫혀 있으니 말이다. ‘그러지 마요. 그냥 내려놓으세요. 세상 바뀌었단 말이에요.’ 스타킹 양말 신어서 더 헐렁한 운동화는 발과 따로 놀았다. 가속기는 살짝만 밟아도 소리부터 내지르니 일절 속도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하기야 여기는 조폐창 앞 도로니까. 시속 60, 한쪽은 감시카메라가 있고 한쪽은 모양으로 달아놓은 감시카메라가 있다. 오른쪽으로 꺾으세요. 핸들 잡고 한쪽으로 솔리지 않기 위해 소파 움켜잡는다. 지용의 글을 화장실에서 읽은 적 있다. 영랑에 관한 시평 같은 것인데 영랑은 이런 말 했다. 그러니까 내 시의 독자가 다섯은 될까? 그러니 지용은 한 마디 덧붙여 써놓았다. 그러면 셋은 있단 말인즉슨 그 둘은 누구란 말인가? 지나가는 관객 1 지나가는 관객 2, 언제나 세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였다. 앞으로 신용사회로 간다. 이점에 대해서는 나는 불행 아다. 가속도로 모는 최신식 바라봐라 밥도 헬멧 같은 것도 없으니까! 비 오는 도로바닥 훑으며 천천히 숨 몰아가며 선생님 얼굴만 떠올렸다.
珈琲景
봄비 모인
한 탁자
상큼한 봄을 놓고
모이 쫓는 병아리처럼
수군거립니다.
쫓는 병아리 피는 봄은
뙤약볕 오른 여름과
황금물결 일렁이는 가을과
뜨끈한 구들을 놓습디다.
한 탁자 모여 피는 봄은
약관도 이립도 불혹도 지천명도 있었지만
옹달샘처럼
병아리처럼
한 사발 봄비 마시며
하늘 봅니다.
본점은 점심시간 이후 잠깐 바빴다. 아무래도 대학생들 중간고사가 임박했나 보다.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최 선생은 주문을 받았고 동원이는 메뉴를 만들었다. ‘바닐라 라떼 한잔 해주세요.’ 최 선생의 목소리는 1층 어디든 들을 수 있었다. 1층 서재 옆에 앉아 있었지만, 단체손님 오시어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잠시 위층에 올라 빈자리가 있는지 확인했지만, 모두 학생들이었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내려왔다. 카페는 말 그대로 도서관이었다. 사동은 아이들의 놀이터와 같았다. 오후 손님 오시는 상황 보아서는 다음 주 시마을 모임도 그리 나쁘지 않게 행사를 치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위층도 아래층도 손님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기분 꽤 좋았다. 어제 음악회 가졌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저녁 먹을 때였다. 어제 음악회 끝나고 난 상황은 솔직히 잘 모른다. 오 선생은 상추에 밥 한 옴큼 싸면서 이런 말 했다. 예지가 어제 음악회 모습 보고는 ‘뭐하자는 건가요.’하며 한마디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음악회 보시러 오시는 고객도 없는데 단 몇몇 앉아 감상하기에는 카페로서는 아까운 낭비 아니냐는 것이었다. 밥 먹다가 뜨끔했다. 예지는 늘 조용하다가도 때로는 뜨끔한 말 한마디씩 하는데 모두 옳은 말이었다. 다른 분은 카페 일로 인해, 이러니저러니 하는 분 없어 그러느니 하며 진행해 왔다. 다음 달 음악회는 심사숙고해보아야겠다. 차라리 그 돈이면 연말 크리스마스트리 대용으로 조형물을 계획하는 것이 오히려 영구적이며 카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일수도 있음이다.
압량, 단골 고 씨가 다녀갔다. 그 외 별다른 일 없었다. 본점, 여느 때 없이 평화로웠다. 압량 마치고 본점에 들렀을 때였다. 내가 앉는 자리는 꽤 밝았는데, 요 며칠 전, 오 선생께서 등 세 개를 갈아 끼웠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갓 등이었는데 갓을 뺑 둘러 빼고, 주먹만 한 등을 거기다가 쏙 끼워 넣었다. 서재는 확연히 달랐다. 주방도 여느 때 없이 평화를 찾았다. 마치 카페 역사 4년 전 모습으로 되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을 정도로 웃음이 일었다. 4년 전과 비교하자면 그때는 여자로만 이루었지만, 지금은 멋있는 남자 바리스타로 이루었다는 거다. 동원이는 갓 오른 은행잎처럼 밝게 손님을 맞았고 그 옆에 새파랗게 오른 정석이도 있다는 거였다. 동원이는 날쌘 제비 같았다. ‘본부장님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예가체프 한잔 드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며 마치 석가모니처럼 웃음을 머금고 얘기했다. 나는 그의 얼굴만 보아도 아주 반갑고 흐뭇했는데 ‘어어 됐다. 괜찮다.’ 하다가도 ‘그래 예가체프 한잔하지’ 했다. ‘네 본부장님 탁월한 선택입니다’ 그러고 있다가 중국사 읽으며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중국의 처지에서 읽었는데 명나라는 대국이라는 명분에 따라 조선 지원군을 보냈다. 그때 명 황제는 주익균(신종, 만력제 1573~1620)이었다. 주익균은 아편 중독자 아니었나 하며 역사서에서는 기술해놓고 있다. 그는 약 30년간 국가의 정무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황궁에만 있었는데 처음으로 내전에 나와 정무를 볼 때 신하들이 놀랐다고 했다. 신하를 보자 처음으로 뱉은 말이 ‘끌어내라’ 였다. 이런 황제가 조선에 구원병을 파병한 것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라며 얘기해 놓고 있는데 참으로 우리의 선조 이연은 바람 앞에 등잔불이었다. 국가가 하마터면 없어질 뻔한 일이었다. 커피가 왔다. 주홍빛 나는 꽃받침에 주홍빛 나는 꽃문양으로 수놓은 잔에다가 까맣게 한잔 담았다. 나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호 예쁘구나!
등燈
천장 보며 보드득 만세 불러요
불빛이 하도 밝아 달만 같아요
개미처럼 쓴 글도 불빛 읽으니
공자도 한비자도 안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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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