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초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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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9-08-17 10:54:32, 조회 : 2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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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계절의 좋은 시 / 문광영(평론가, 교수)      



지난 계절의 좋은 시 / 문광영(평론가, 교수)


폐가 / 마경덕
                                    

부스스 머리를 풀어헤친
집이 운다
빗물 고인 장독을 들여다보고

앞마당 잡초 더미
봉숭아 한 그루 붉게 터졌다
조랑조랑 꽃을 달고
어리둥절 서 있다

바람 한 점에
퍽, 바지랑대 쓰러지고
놀란 집이 퍼뜩
한쪽 발을 쳐든다

사타구니 뵈는 집
더는 숨길 게 없다고 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턴다

누가 알맹이를 빼먹고 껍질만 남겼을까

- 《시로 여는 세상》 2005년 가을호


<해설>

  시는 하늘의 연과 같은 것이다. 연은 땅이라는 현실과 연줄 하나만으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광활한 창공을 자유자제로 넘나든다. 현실적, 실용적 논리나 과학적 합리성으로부터 일탈되어 있는 상상의 신비, 곤(鯤)이 붕(鵬)이 되기도 하는 소요유(逍遙遊) 같은 신화적 상상력의 세계가 필시 시 본연의 장르다. 만약 시가 그렇지 않으면 맛대가리가 없게 마련이다. 마경덕의 시 <폐가>는 ‘폐가’에서 보여주는 유한적 사물 존재의 잔상들이 착란의 풍경을 이루며 유의미적 정감을 건네준다. 이농(離農)의 아픔과 퇴락해가는 시골의 스산한 정취를 그려내고 있음에도 화자의 시선은 너무나 정겹고 따스하다. “바람 한 점에 픽, 바지랑대가 쓰러지고, 놀란 집이 한쪽 발을 쳐들고 사타구니가 뵈는”,“주머니를 뒤집어 탈탈 털어낸” 껍데기의 폐가. 그렇지만 그 폐가들은 내가 한동안 살아온 보금자리이자, 우리 집안의 온전한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누가 알맹이를 빼먹고 껍질만 남겼을까” 라고 한 전경화한 물음에서, 흔적과 부재의 시간 현실에 대한 시인 나름의 참신한 통찰의식을 읽을 수 있어 흥미롭다. 그래서 그의 시적 연줄이 근원에 뿌리를 두는 생명의식으로 점철, 원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문광영/ 문학평론가. 경인교대 교수)      


-학산문학 2006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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