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톨스토이
금주의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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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네이 바실리예프가 마지막으로 마을에 찾아온 것은 54세가 되던 해였다. 그 숱이 많은 곱슬머리에는 단 한 올의 흰머리도 없었고 단지 광대뼈 근처의 수염에 희끗한 것이 조금 보일 뿐이었다. 얼굴은 윤기에 넘치고 혈색이 좋았으며 목덜미는 넓고 튼튼해 보였고, 그 강인한 몸은 도회지에서의 영양이 풍부한 식사 덕분에 탄력 있어 보였다.
그는 20년 전에 군대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얼마간의 돈을 모아서 마을에 돌아왔었다. 처음 그는 작은 가게를 시작했지만 곧 가게를 그만두고 가축상이 되어 체르카시에 가서 '물건(즉 ,가축)' 을 사들여 그것을 모스크바에 팔러갔다.
가야 마을에 있는, 석조 건물에 철판 지붕을 얹은 그의 집에는 그의 노모와 아내와 두 아이(딸과 아들)와 부모를 잃은 그의 조카뻘 되는 벙어릴 남자아이와 하인이 있었다. 코르네이는 재혼을 했다. 첫 번째 아내는 허약해서 잦은 병치레로 아이도 낳지 못한 채 죽었고, 그 때문에 꽤 나이 들어서 옆 마을에 살던 가난한 과부의 딸인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재혼을 하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두 번째 부인이 낳은 것이었다.
코르네이는 가장 최근에 사들인 가축들을 모스크바에서 유리한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에 그의 수중에는 거의 3천 루블에 가까운 돈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몰락한 지주가 숲을 싼 가격에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삼림 판매에 손을 한번 대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군대에서 근무하기 전에 삼림상의 가게를 봐 주기 위해서 견습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코르네이는 가히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역에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쿠지마라는 애꾸눈 사나이를 만났다. 쿠지마는 열차가 도착할 때마다 손님을 싣기 위해서 털이 여기저기 뭉쳐 있는 두 마리의 짐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가히 마을에서 역으로 나오고 있었다. 쿠지마는 가난한 사람이었기에 부자들을 아주 싫어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코르네이를 가장 싫어해서 그를 코르뉴시카라 부르고 있었다.
반코트에 가죽 옷을 입은 코르네이는 가방을 든 채 역에서 나와 배를 내밀고 서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이었다. 흐린 하늘은 조용했으며, 쌀쌀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 이봐, 쿠지마 영감. 손님을 잡았나? 내를 태워 주지 않겠나?"
그가 말했다.
"좋아. 일 루블에 태워다 주지."
" 70코페이카면 되지 않나?"
"돈을 그렇게 모았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30코페이카쯤은 덤으로 생각해 주면 안 되겠나?
"알았소. 줄 테니 태워다 주시오."
이렇게 말한 코르네이는 그 조그만 썰매 위에 가방과 짐을 올려 놓고 뒤쪽에 편안하게 앉았다.
쿠지마는 마 부석에 앉은 채였다.
"자, 출발하자고."
썰매는 역을 떠나 평탄한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마을의, 우리 부락이 아니라 자네들 부락은 요즘 어떤가?"
코르네가 물었다.
"별 볼일 없수다."
"그래?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건강하신가?"
"자네 어머니는 아주 건강하다네. 얼마 전에도 교회에 나오셨는걸. 노인네도 건강하고 자네의 젊은 처도 건강하지. 활기가 넘쳐 보여. 얼마 전에 하인을 새로 들였지."
이렇게 말하며 쿠지마는 웃음을 지었는데 코르네이는 그 웃음이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떤 하인이지? 표도르는?"
"표도르는 병에 걸렸어 그래서 예프스치그네이 벨르이를 카멘카 마을에서 데려와 고용했지. 즉, 자기가 살고 있던 마을에서."
"아, 그래?"
코르네이가 말했다.
코르네이와 마르파의 혼담이 오갈 때부터 예프스치그네이에 대한 소문이 여기자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봐, 코르네이 바실리예프. 요즘에는 여자들 콧대가 아주 높아졌단 말이야."
쿠지마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중얼거리듯 말한 코르네이는 화제를 돌리려고 다른 말을 했다.
"그런데 자네 말들도 꽤 늙어 버렸군."
" 나도 이렇게 늙어 버렸는걸. 서로 마찬가지지."
이렇게 대답한 쿠지마는 다리가 굽어 버린 늙은 말을 향해서 채찍을 한 번 휘둘렀다.
도중에 주막이 있었다. 코르네이는 썰매를 세운 뒤 그곳으로 들어갔다. 쿠지마는 주막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구유 앞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봇줄을 다시 묶기도 하면서 한 잔 하자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르네이 영감, 들어 오슈. 한 잔 합시다."
코르네이가 현관 밖으로 나와서 말했다.
"오 고마우이."
쿠지마느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코르네이는 술을 한 병 시켜서 쿠지마에게 권했다. 쿠지마는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취기가 돌자마자 바로 코르네이의 옆으로 다가와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마을에 나돌고 있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그의 아내인 마르파가 자신의 예전 정부를 하인으로 고용하고 그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네는 안됐구먼. 세상의 웃음거리가 돼서는 안 되지. 도대체가 죄를 죄라고도 생각지 않고 있는 모양이야. 어디 두고 보라고.금방 진짜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생각했지. 뭐, 그렇게 된 거야, 코르네이 바실리예프!"
술에 취한 쿠지마가 말했다.
코르네이는 마무 말없이 쿠지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그 검은 눈썹이 점점 밑으로 처지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숯과 같은 검은 눈동자를 덮어 가고 있었다.
"어때? 말에게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나? 주지 않아도 된다면 출발하지고."
술병이 빈 것을 보고 그가 말했다. 그는 계산을 마친 뒤, 거리로 나섰다.
집에 도착한 것은 해사 저물녘이었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집으로 오는 동안 한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예프스치그네이 벨르이였다. 코르네이는 그와 인사를 나눴다. 눈썹과 속눈썹에는 흰빛이 감돌고 있었으며, 심하게 여위어서 좀 가벼워 보이는 예프스치그네이의 모습을 보고 코르네이는 '설마 이런 놈과' 라며 말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 늙어빠진 개 같은 놈. 거짓말을 했군.'
그는 쿠지마가 한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알 수 없지. 좋아! 곧 밝혀내고 말겠어.'
쿠지마는 말 옆에 서서 그 한 쪽뿐인 눈으로 예프스치그네이에게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먹고 자고 있나?"
코르네이기 물었다.
"예,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예프스치그네이가 대답했다.
"방 페치카에 불을 피워 놓았는가?"
"피워 놓았습니다. 마트베브나가 계시니까요."
예프스치그네이가 대답했다.
코르네이는 계단을 올라갔다. 목소리를 알아들은 마르파가 현관까지 나와서 남편의 모습을 보고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듯 전에 없이 애교를 떨면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저도 어머님도 기다리다 지쳐 버렸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남편의 뒤를 따라서 방으로 들어섰다.
"내가 없는 동안 모두들 어떻게 지냈지?"
"늘 그렇지요, 뭐."
이렇게 말한 그녀는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젖을 달라고 보채는 두 살 난 아이를 안아 올려 성큼성큼 현관 쪽으로 나갔다.
코르네이와 마찬가지로 검은 눈을 한 그녀의 어머니가 장화를 신은 발을 질질 끌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오너라."
그녀는
떨리는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코르네이는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이 돌아왔는지를 설명하고 쿠지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요금을 지불하려 밖으로 나섰다. 현관으로 나서는 문을 열자 그 바로 옆에 마르파와 예프스치그네이가 있었다. 코르네이를 보자마자 예프스치그네이는 밖으로 뛰쳐나갔으며, 마르파는 사모바르가 있는 곳으로 가서 굴뚝의 상태를 살폈다.
코르네이는 아무 말 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내의 등 뒤쪽을 지나 짐을 집어 들고 쿠지마에게 차를 마시고 가라고 말했다. 차를 마시기 전에 코르네이는 모스크바에서 사 온 선물을 자족들에게 돌렸다. 어머니에게는 비단 스카프, 페디카에게는 그림책, 벙어리 조카에게는 조끼, 아내에게는 옷감을 선물했다.
단지 벙어리 조카가 자신의 기쁨을 나타개기 위해서 모두를 웃겼을 때만 하는 수 없이 조금 웃어 보였을 뿐이었다. 조카는 조끼를 받은 것이 견딜 수 없이 기뻤던지 그것을 펼쳐 보기도 하고 접어 보기도 하고 입어 보기도 하고 코르네이를 보고 자신의 손에 집을 맞추며 웃어 보이곤 했다.
차와 저녁 식사를 마친 코르네이는 곧장 마르파와 어린 딸과 자신, 셋이서 자기로 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마르파는 식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그곳에 남아 있었다. 코르네이는 홀로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아내를 기다렸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아내에 대한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다. 그는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벽에 걸어 놓았던 주판을 내리고,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계산을 하면서도 문 쪽을 바라보고 식당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몇 번인가 식당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현관 쪽으로 나가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은 열리면서 빨간 스카프를 두른, 피부색이 고운 아름다운 아내가 여자 아이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섰다.
"오랫동안 객지에서 고생 많으셨죠?"
그녀는 그의 어두운 표정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코르네이는 그녀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더 이상 계산할 것이 없으면서도 다시 주판을 튕기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여자 아이를 내려놓고 칸막이 건너편 침실 쪽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침대를 정리하고 여자 아이를 재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다.' 라고 했던 쿠지마의 말이 떠올랐다. '어디, 두고 보자.' 숨 막힐 듯 한 생각에 이렇게 중얼거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몽당연필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주판을 못에 건 뒤 침실 문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녀는 성상 앞에 서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는 거기에 서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오랫동안 성호를 그은 뒤 머리를 숙이고 기도를 했다. 그는 그녀가 기도를 이미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다시 한 번 기도를 외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그녀는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중얼중얼 기도 문구를 외운 다음 그를 향해서 얼굴을 돌렸다.
"아가샤는 벌써 잠들었어요."
그녀는 여자 아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 뒤, 빙그레 웃으며 삐걱 이는 침대위에 앉았다.
"예프스치그네이는 언제부터 우리 집에서 머물렀지?"
코르네이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녀는 침착한 동작으로 땋아 내린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 너머로 당겨 가슴 위로 늘어뜨리더니 잽싸게 손가락을 움직여 그 머리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리낌 없이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에는 웃음이 여려 있었다.
"예프스치그네이요? 잘 모르겠는데 한 2주나 3주 정도 됐어요."
"너, 그 녀석과 눈이 맞았지?"
코르네이가 말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을 잡깐 놓았다가 다시 그 거칠고 숱이 많은 머리를 잡아 땋아 내리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예요? 예프스트그네이와 눈이 맞다니? 기가 막혀서. 누가 그런 소리를 했죠?"
그녀는 예프스치그네이라는 이름을 일부러 또박또박 발음했다.
"말해! 진실을 말하란 말이야!"
코르네이는 주머니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쓸데없는 말씀 마세요. 그건 그렇게 이젠 신을 벗으세요."
"말을 해 보라니까!"
다시 코르네이가 말했다.
"어머! 내가 예프스치그네이랑 눈이 맞았다고요? 누가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그녀가 말했다.
"조금 전에 현관에서 그놈하고 무슨 말을 했지?"
"무슨 말을 하다니요? 통에 조임 쇠를 채워야겠다고 말했어요. 어째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죠?"
"말해! 사실을 말하란 말이야! 죽여 버리겠어. 이 돼지 같은 년!"
그는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녀는 머리채를 그의 손에서 빼냈지만 아픔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툭하면 폭력을 휘드르고! 정말 결혼한 뒤로 좋은 꼴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이런 생활이라면 나도 정말 지긋지긋해요."
"지긋지긋해?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왜 머리채를 휘어잡냐고요? 이것 봐요. 이렇게 많이 빠졌잖아요. 도대체 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도대체가 내가 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잽싸게 그녀의 팔을 낚아채서 침대에서 끌어내린 뒤, 머리며, 옆구리, 가슴 등을 마구잡이로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녀를 때리면 때릴수록 그녀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녀는 울부짖으며 몸을 막고 도망치려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엄마 옆을 달려왔다.
"엄마!"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코르네이는 여자 아이의 가슴을 잡아 어머니에게서 떼어낸 뒤, 고양이 새끼를 내던지듯 방 구석으로 아이를 집어던졌다. 아이는 캭!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한동안은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악마 같은 녀석! 아이를 죽이다니!"
이렇게 외친 마르파는 몸을 일으켜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코르네이가 다시 그녀를 붙잡아 가슴을 세게 때렸기 때문에 그녀도 바닥에 엎드린 채 쓰러져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 아이가 미친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스카프도 걸치지 않은 노파가 허연 머리를 풀어헤친 채 목을 흔들 듯 비틀비틀 달려와서 코르네이와 마르파는 쳐다보지도 않고 울고 있는 아이 곁으로 가서 그를 앉아 올렸다.
코르네이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마치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르파는 얼굴을 들어 신음 소리를 내며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남편의 외투에 문질렀다.
" 이 악마! 그래, 나 예프스치그네이와 눈이 맞았다. 전부터 그랬다고. 어디, 죽여 봐! 아가샤도 네 딸이 아니야. 그 사람 아이라고."
빠른 어조로 이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맞을 것에 대비해서 팔꿈치고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코르네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신음 소리를 내며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이것 좀 봐라, 이 아이를, 이 이이를! 팔이 부러지질 않았니?"
노파는 여전히 울고 있는 여자 아이의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코르네이는 획 하고 몸을 돌려 현관을 지나 밖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추웠으며 날도 흐려 있었다. 싸라기눈이 그의 열띤 뺨과 이마에 부딪혔다. 그는 계단 위에 앉아 난간의 눈을 한 웅 큼 쥐어 입에 넣었다. 문 안쪽에서 마르파의 신음 소리와 여자 아이의 가엾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곧 현관 안쪽 문이 열리면서 노모가 손녀딸을 안고 거실에서 일어나 거실로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는 심을 줄여 놓은 램프가 은근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가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칸막이 건너편에서는 마르파의 신음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그는 말없이 옷을 입고 긴 의자 밑에서 가방을 꺼내 생필품들을 챙겨 넣은 뒤 끈을 묶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왜?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마르파가 가련한 목소리로 말했다. 코르네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방을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깡패! 악당! 두고 보라지. 틀림없이 천벌을 받을 거야."
마르파가 갑자가 돌변하여 쌀쌀맞은 목소리라 말했다.
코르네이는 변함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해 벽이 흔들릴 정도로 쾅 하고 발로 문을 닫았다.
식당으로 들어선 코르네이는 벙어리 조카를 깨워 썰매에 말을 묶으라고 명령했다. 조카는 얼른 잠이 깨지 앉아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면서 양손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코르네이의 말을 알아들은 그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장화를 싣고 다 떨어진 반코트를 걸치고 등불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코르네이가 벙어리 조카와 함께 작은 썰매를 타고 문을 나서서 이제 쿠지마와 함께 왔던 길을 반대로 거슬러 갈 때는 이미 아침이 찾아와 있었다.
그는 열차가 출발하기 바로 5분 전에 역에 도착했다. 조카는 그가 표를 사서 가방을 들고 차 안에 자리를 잡은 뒤 이별을 고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곧 열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르파는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갈비뼈가 두 개 부러졌으며 머리에 상처까지 입었다. 하지만 6개월쯤 지나자 젊고 건강한 그녀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여 상처의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 아이는 그대로 불구자가 되어 버렸다. 팔의 뼈가 두 군데나 부러져서 결국에는 팔이 휜 채로 굳어 버렸다.
집을 나간 코르네이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ㅡ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늦가을이었다. 낮이 짧아져 4시간 되면 이미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드레예프카의 가축 떼가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예정된 기간 동안의 일을 마친 목동들은 단식재(斷食齋)를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지금은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그들 대신 가축을 돌보고 있었다.
가축 떼는 귀리를 베어 버린 밭을 지나서 말발굽의 흔적과 깊은 바퀴 자국투성이의 더러운 검은 흙이 깔린 거리로 나와서 끊임없이 음매음매, 매애매애 울면서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축 떼들 앞으로 비바람에 젖어 새카맣게 변해 버린 외투를 입고 커다란 모자를 쓰고 굽은 등에 가죽 배낭을 짊어진 키가 큰 노인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턱수염과 곱슬머리가 모두 흰색이었으며 단지 두꺼운 눈썹만이 검은 빛이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떡갈나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너덜거리고 축축하게 젖은 작은 러시아식 구두를 웅덩이에 끌듯이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이었다. 가축 떼들이 그를 따라 잡았을 때,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그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서 있었다. 가축들을 뒤따르고 있던,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바지를 걷어 올린 발에 남자용 자와를 신은 젊은 여자가 빠른 발놀림으로 거리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며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양과 돼지를 안으로 몰고 있었다. 노인 옆으로 다가온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그녀는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활기차게 말했다.
"아, 안녕."
노인이 대답했다.
"오늘 밤은 이 마을에서 묵으실 거죠?"
" 그래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노인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경찰서로 가지 마시고 곧장 우리 집으로 가세요. 끝에서 세 번째 집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여행자들을 머물게 하시니까요."
젊은 아가씨는 노인을 위로하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번째 집? 지노베예프 제 집이로군."
이렇게 말한 노인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이 눈썹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할아버지, 우리 지을 알고 계세요?"
"응, 전에 들른 적이 있었지."
"이봐, 페추시카. 뭘 그리 멍하니 서 있는 거야? 저 절름발이가 저렇게 뒤처져 있는데."
그녀는 무리의 뒤쪽에서 다리를 질질 끌며 걷고 있는 세 발 달린 양을 가리키며 이러게 외치고는 오른손으로 마른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밑 부분이 묘하게 일그러진 왼손으로 스카프를 누르면서 무리에서 뒤처진 절름발이 검은 양을 따라 뛰어갔다.
노은은 코르네이였으며, 젊은 아가씨는 그가 17년 전에 팔을 부러뜨린 아가샤였다. 그녀는 가히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안드레예프카 마을에 있는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건강하고 부유하며 자존심 강한 남자였던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도 지금은 완전히 몰락해서 몸에 걸친 누더기와, 병역증서와, 가죽 배낭 안에 들은 두 벌의 속옷 외에는 무엇 하나 가진 것이 없는 늙은 거지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신병상의 변화는 아주 조금씩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신조차도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직 하나 그가 알고 있는 사실,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실은 그의 불행의 모든 책임이 그 사악한 아내에게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그 자신이 17년간 맛본 모든 불행의 원인인 아내에 대한 증오심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아내를 때린 그날 밤, 그는 숲을 팔려고 내놓은 지주를 만났다. 하지만 숲을 사지는 못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사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허무하게 모스크바로 돌아가 홧김에 술을 마셨다. 그는 이전에도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2주일간 쉬자 않고, 취기가 가실 틈도 없을 정도로 마시다가 간신히 술에서 깨어나자 이번에는 남부지방으로 가축을 사들이러 갔다. 그것으로 장사를 했지만 실패를 해서 손해를 봤다. 그는 다시 한 번 가축을 사들였지만 이번에도 실패를 하고 말았다. 이렇게 일 년 뒤에는 3천 루블 가까이 있던 수중의 돈을 겨우 35 루블이 되어 결국에는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될 신세가 되었다. 그는 전에도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더욱 자주 술을 마시게 되었다.
처음 일 년 동안은 가축상의 일을 봐 주었지만, 일을 하던 중에 술을 마셨기 때문에 쫓겨나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의 소개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도 오래 있지 못했다. 계산을 잘못해서 해고당하고 만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니 부끄럽기도 했고 또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없어도 잘 살고 있겠지. 어쩌면 사내아이도 내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었다. 이제 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장사를 돌봐 주는 자리에는 고용되지 않았으며, 목동으로 고용되기도 했지만 곧 그것도 고용해 주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점점 몰락해 갈수록 그는 속으로 더욱 아내를 원망하며 그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 가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목동으로 고용한 곳은 전혀 안면이 없는 집이었다. 그런데 가축들이 모두 병에 걸리고 말았다. 특별히 코르네이에게 책임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주인은 화를 내며 그를 해고했다. 드디어 완전히 일자리를 잃은 코르네이는 방랑의 길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장화와 질 좋은 가죽 배낭을 준비하고, 차와 설탕과 8루블을 가지고 키예프로 갔다. 하지만 키예프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카프카스에 있는 노브이 아흔으로 향했다. 돈도 1루블 70코페이카밖에 남질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결국에는 아들을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돼지 같은 년은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만약 아직도 살아 있다면 죽기 전에 그년 덕분에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모든 사실을 말해 주겠어.’ 이렇게 생각한 그는 자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열병은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괴롭혔다. 몸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갔기 때문에 하루에 10 리나 15 리를 걷는 것이 고작이었다. 집까지 아직 200리나 남아 있었는데 돈도 완전히 떨어져서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구걸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밤에는 경찰이 소개해 주는 집으로 가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기쁘기도 하겠군. 너 덕분에 이런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오랜 습관대로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이제 더 이상 때릴 사람도 없었고, 주먹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2주일 동안 200리를 걸었다. 병약해진 몸으로 간신히 자기 집에서 4리 떨어진 곳까지 와서 자신도 눈치 채지 못했고, 상대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아가샤를,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자신이 그 딸을 부러뜨린, 아가샤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ㅡ
코르네이는 아가샤가 말한 대로 했다. 지노베예프의 집에 도착한 그는 하룻밤 재워줄 것을 청했다. 곧 바로 집 안으로 안내되었다. 집으로 들어간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성상을 향해 성호를 그은 뒤, 집안 식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춥죠? 자, 이쪽 페치카 위로 올라오세요.”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있던 주름투성이 노파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샤의 젊은 남편은 테이블 옆의 긴 의자에 앉아서 램프를 손질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다 젖었잖아요. 이런. 이거 빨리 말려야겠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코르네이는 옷을 벗고, 구두를 벗은 뒤 각반을 페치카의 반대쪽 벽에 걸고는 페치카 위로 올라섰다.
바로 그때 아가샤가 항아리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가축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축사에 들여보낸 것이었다.
“나이 든 여행자가 오지 않았어요?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했는데.”
그녀가 물었다
“응. 저쪽에 있어.”
그녀의 남편은 털이 많고 뼈가 앙상한 다리를 문지르면서 코르네이가 앉아 있는 페치카 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를 마실 시간이 되자 가족들이 그를 불렀다. 그는 페치카에서 내려와 긴 의자 끝에 앉았다. 차와 설탕을 그에게 주었다.
날씨에 관한 이야기, 수확에 관한 이야기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올해는 보리의 작황이 좋지 않다, 지주들의 보리는 밭에 쌓아 둔 동안 싹이 트고 말았다, 집으로 막 옮기려 했는데 다시 비가 내리가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농민들은 간신히 그것을 옮겼다, 주인집 보리는 썩어 버렸다, 그리고 보릿단 속은 쥐들의 천국! 이런 말들이 오갔다.
코르네이도 길거리 여기저기서 보릿단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젊은 부인은 다섯 잔째로 이미 색이 거의 다 빠져 버린 홍차를 코르네이에게 권했다.
“할아버지, 사양 마시고 한 잔 더 드세요.”
사양하려던 그를 향해서 그녀가 말했다.
“색시 팔은 왜 그렇게 됐지?”
코르네이는 홍차가 가득 담긴 컵을 조심스레 받아 들고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렇게 물었다.
“어렸을 때 뼈가 부러졌어. 우리 아가샤는 자기 아버지에게 목숨을 빼앗길 정도로 지독한 일을 당했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노파가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코르네이가 물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젊은 부인을 바라본 순간 그는 파란 눈을 한 예프스치그네이 벨르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간 컵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심하게 떨려 와 컵을 테이블 위로 옮기기까지 차는 반 정도가 넘쳐 흘렀다.
“가히 마을에 살고 있던 이 사람의 아버지는 말이죠,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라는 부자였어요. 그 사람이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내면서 두들겨 패다가 결국에는 이 사람 팔까지 부러뜨렸다니까요.”
코르네이는 검은 눈썹을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아무 말 없이 아가샤와 그 남편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죠?”
코르네이가 설탕을 물어뜯으며 물었다.
“그걸 누가 알겠어? 어쨌든 여자 주위에는 정말 여러 가지 헛소문들이 나돈다니까. 고용한 하인과 눈이 맞았다는 둥, 어쨌다는 둥.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하인이라는 사람. 우리 마을 출신이었거든. 지금은 벌써 그 집에서 죽고 없지만.”
노파가 말했다.
“죽었습니까?”
이렇게 되물은 코르네이는 킁 하고 마른기침을 한 번했다.
“벌서 옛날에 죽었지. 우리 며느리는 그 집에서 왔어. 정말 훌륭한 집이었어.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마을에서 가장 형편이 좋았지.”
“그럼,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코르네이가 물었다.
“그 사람도 죽었을 거야, 그날 이후로 모습을 감췄거든. 벌써 15년 정도 됐을거라고 생각되는데.”
“아니에요. 훨씬 전이에요. 제가 젖을 막 뗄 무렵이라고 어머니가 그러셨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원망하고 있지 않나요? 손을 그렇게 ......,”
코르네이는 이렇게 말하다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타인이 아닌 걸요. 아버지잖아요. 어때요? 한 잔 더 드세요. 몸이 따뜻해지게. 드릴까요?”
코르네이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젠 자야겠어요.”
코르네이는 떨리는 양손으로 작은 책상과 포라치(천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침상 ㅡ 역자 주)를 짚고 마른 다리를 끌면서 페치카로 기어올랐다.
“이상한 사람이군!”
노파가 노인 쪽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말했다.
ㅡ
다음 날 코르네이는 누구보다도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페치카에서 내려와 마른 각반을 문질러 펴고, 바싹 마른 장화를 억지로 신은 뒤, 가죽 배낭을 어깨에 걸쳤다.
“할아버지. 아침을 먹고 가는 게 어때요?”
노파가 말했다.
“아, 고마워요. 하지만 이제 그만 실례하겠소.”
“그럼 어제 먹던 빵이라도 가지고 가요. 가죽 배낭에 넣어 줄 테니.”
감사의 마을 전한 코르네이는 작별 인사를 했다.
“돌아갈 때 또 들러요. 우린 여기 그대로 있을 테니......,”
문 밖에는 짙은 가을 안개가 모든 것을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코르네이는 길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풀이 무성한 곳, 길 양옆의 버드나무 중에는 잘려 나가고 새로운 것이 성장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또 어떤 것은 어린나무가 성장하여 고목이 되어 버린 거도 있기는 했지만.
가히 마을도 전부 옛날 그대로였지만 단지 마을 구석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중에는 목조였던 것이 벽돌 건물로 바뀐 것들도 있었다. 석조였던 그의 집은 그대로 있었지만 많이 낡아 있었다.
그가 예전의 자기 집으로 다가갔을 때, 삐걱 이며 문이 열리더니 망아지를 데리고 암말과, 흰 턱의 늙은 거세마와 세 살 된 아이가 밖으로 나왔다. 그 나이든 거세마는 코르르네이가 집을 나서기 일 년 전에 시장에서 샀던 암말을 꼭 닮아 있었다.
‘저건 그때 그 암말이 품고 있던 녀석이 틀림없을 거야. 엉덩이가 내려앉은 것하며, 넓은 가슴하며, 털이 긴 다리 전부 꼭 빼닮았어.’
그는 생각했다. 물을 먹이기 위해서 말들을 데리고 나온 것도 나무껍질로 만든 새 신을 신은 검은 눈동자의 소년이었다.
‘틀림없는 내 손자다. 페치카의 아들이야.’
코르네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소년은 한동안 낯선 노인을 바라보다가 웅덩이에서 뛰놀고 있는 망아지들을 쫓아갔다. 소년 뒤쪽에서, 전에 키우던 볼초크와 같이, 검을 털을 가진 개가 다려 나갔다.
‘볼초크가 아닐까?’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곧, 볼초크라면 이미 20살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때달았다.
그는 계단으로 다가가, 그날 밤 그곳에 앉아 난간에 있던 눈을 움켜쥐고 입에 넣었던 그 계단을 간신히 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왜 마음댁로 들어오는 거죠?”
집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마르파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곧 그녀가, 말라서 핏줄이 불거져 나온 주름투성이의 노파가 문 안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코르네이는 자신을 배신했던 그 젊고 아람다운 마르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증오하고 마음껏 욕을 퍼부어 줄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노파였다.
“거지라면 창 밑에서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녀는 날카롭게 삐걱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지가 아니오.”
코르네이가 말했다.
“그럼 뭐야? 무슨 일이지?”
그녀는 순간 말을 잃었다. 코르네이는 그녀의 얼굴 표정에서 그녀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 녀석들 같은 놈들한텐 이젠 신물이 난다고. 돌아가, 돌아가라고!”
코르네이는 등을 벽에 기댄 채 지팡이에 의지해서 가만히 그녀를 들여다보았는데, 자신도 놀랄 정도로 그렇게 오랜 시간 그녀에 대해서 품어 왔던 증오심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이 가슴 가득 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르파, 곧 죽을 몸이 아닌가?”
“어서 나가, 나가라고!”
그녀는 빠르고 쌀쌀맞은 어조로 말했다.
“할 말은 그것뿐인가?”
“할 말 없어요. 나가, 나가! 얼른 나가라고! 너 같은 비렁뱅이들은 신물이 날 정도로 봐 왔다고.”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서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허리띠에 도끼를 찔러 넣은, 검게 그을린 피부를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는데, 40년 전의 코르네이를 쏙 빼닮은 모습으로 좀 키가 작고 마르기는 했지만 코르네이와 마찬가지로 검고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17년 전에 그가 그림책을 사다 준 페디카였다. 그는 어머니가 거지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점을 책망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역시 허리띠에 도끼를 찬 벙어리 조카가 밖으로 나왔다. 지름은 완전한 어른이 되어 턱에는 옅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잔주름이 많은 근육질의 몸매에 목은 길고 가늘었으며, 다부져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침식사를 마치고 숲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할아버지, 잠깐 기다리세요.”
이렇게 말한 표도르는 벙어리를 향해 처음에는 노인을 가리키더니 다음에는 방 안을 가리키고, 이어서 손짓으로 빵을 자르는 동작을 해 보였다.
표도르는 거리로 나가고, 벙어리는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코르네이는 변함없이 머리를 숙이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지팡이에 의지해서 서 있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약해져 눈물이 흘러내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벙어리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이제 막 구워 낸 커다란 검은 빵을 가지고 집에서 나와 코르네이에게 그것을 건넸다. 코르네이가 성호를 긋고 그것을 받아들었을 때, 벙어리는 집의 문을 향해서 양손으로 얼굴을 비비면서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숙모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이건 코르네이 삼촌이 아닌가.’ 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코르네이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하고 눈과 코와 하얀 수염을 외투 깃으로 닦으며 얼굴을 돌려 밖의 계단으로 향했다. 그는 일종의 독특한 감동과 환희를 동반한, 자기 아들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겸손과 비하의 감정을 맛보고 있었는데 그 감정이 그이 마음을 달콤쌉싸름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마르파는 창문으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노인이 집들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드디어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르파는 노인이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 한 뒤, 베틀에 앉아 천을 짜기 시작했다. 열 번 정도 추를 움직여 봤지만 더 이상은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조금 전에 자신이 보았던 코르네이의 모습읅 떠올리기도 하고, 옛날 일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녀는 그 노인이 코르네이였다는 사실, 자신을 죽일 정도로 때린, 그리고 이전에는 자신을 사랑했던 코르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름 자신이 그에게 취한 태도를 생각하고는 문득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은 옳은 것이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 어떻게 행동을 했어야만 했던 것일까? 그 사람은 자신이 코르네이라는 사실도 집에 돌아온 것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는 다시 추를 집어 들고는 밤까지 계속 천을 짜고 있었다.
ㅡ
해질 무렵에 간신히 안드래예프카 마을에 도착한 코르네이는 다시 지노베예프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더 묵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 집 식구들은 흔쾌히 그를 맞아들였다.
“그럼, 할아버지. 볼일은 안 보셨어요?”
“가지 않았어요. 피곤해서요. 이젠 돌아가야겠어요. 하룻밤 더 재워 주시지 않으려우?”
“좋고말고요. 어서 올라오셔서 몸을 말리세요.”
코르네이는 밤새도록 열병에 시달렸다. 새벽이 다 돼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집안 사람들은 각자의 일로 외출을 했고 집 안에는 아가샤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페치카에서 빵을 꺼내고 있었다.
“색시, 이쪽으로 잠깐 와 봐요.”
그가 쇠잔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네, 할아버지. 뭣 좀 마실래요? 크바스는 어때요?”
그녀는 빵을 테이블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빵을 테이블 위에 가지런하게 올려놓은 뒤, 그녀가 크바스가 든 항아리를 들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으며 크바스는 마시려고도 하지 않고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가샤, 드디어 때가 왔구나. 나는 곧 죽을 게다. 너도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께서 용서해 주실 거예요. 할아버지는 내게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더 있다. 네 어머님께로 가서 전해 주렴......, 그 나그네가, 그......, 어제 만났던 그 나그네가, 그......, 제발 한번만, 저......,”
그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할아버지, 우리 처가에도 갔었어요?”
“갔었지. 전해 주길 바란다. 나그네가......, 나그네가...... 그......,”
그는 다시 통곡을 하며 말을 잇지 못했지만 곧 마지막 힘을 다해서 이렇게 말했다.
“화해와 용서를 빌러 찾아갔었다고.”
이렇게 말한 그는 자신의 가슴에서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다.
“전해 줄게요, 할아버지. 전해 주고말고요. 뭘 그렇게 찾으세요?”
아가샤가 말했다.
노인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얼굴을 찡그리며 털이 수북한 깡마른 팔로 간신히 품에서 증명서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냈다.
“이걸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주길 바란다. 내 명역증서야. 아, 이젠 나도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겠지.”
그의 얼굴에 범하기 어려운 표정이 떠올랐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천장을 바라본 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초를!“
그는 입술도 움직이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아가샤는 곧 그 말을 알아듣고 성상 앞에 있던 초를 가져다 불을 붙여서 그것을 코르네이에게 건넸다. 그는 커다란 손가락으로 그것을 쥐었다.
아가샤는 병역증서를 트렁크에 넣으러 갔다. 그리고 다시 코르네이 곁으로 와서 보니 초는 그 손에서 떨어져 있었으며, 눈은 뜬 채로 깜빡이지도 않았으며, 숨도 멈춰 있었다. 아가샤는 성호를 긋고 촛불을 불어 끈 뒤, 깨끗한 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덮었다.
그날 밤, 마르파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코르네이에 대해서 상각했다. 아침이 되자 그녀는 외투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뒤, 어제의 그 노인을 찾아 나섰다. 곧 그 노인이 안드레예프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르파는 울타리에서 지팡이로 쓸만한 나무를 뽑아 들고 안드레예프카로 향했다. 걸음을 걸을수록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과 화해를 하자. 그리고 집으로 데려오자. 죄를 씻어야지.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죽을 수 있게 해야지.’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르파가 딸의 집 가까이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보았다. 현관 앞에 서 있는 사람도 있었고, 창문 옆에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40년 전 이 동네에서 그렇게 유명했던 부자 코르네이 바실리예프가 가난한 나그네가 되어 자기 딸의 집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 안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자들은 서로 속삭이며 한숨을 짓기도 했다.
마르파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모두가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염을 끝내고 천에 둘러싸여 있는 성상 밑의 시체를 보았다. 글을 읽을 줄 아는 필립 코노느이치가 신부 대신,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 듯한 소리로 슬라브어로 된 시편을 머리맡에서 낭독하고 있었다.
용서하는 일도, 용서를 비는 일도 이제 할 수가 없었다. 코르네이이 엄숙하고 아름다운 얼굴로는 과연 그가 용서를 한 것인지, 아직도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를 판별해 낼 수 없었다.
ㅡ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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