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만드는 사람 / 김경인
거울 속에 숨어 있는 사람, 내 꿈의 목록을 검은 일기장에 적어 거울에 박아 놓은, 밤새도록 계단 아래로 달아나는 내 아름다운 하이힐을 부러뜨리는, 피투성이 펜대를 쥐어주는, 첫 번째 나뭇잎에게 오래된 뿌리를 보여준, 무너진 내 지붕 위로 봄눈을 내려줄 수도 있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면 거울 안에 나를 가두는, 부수면 흩어진 조각으로 또 거울을 만드는, 깨뜨릴수록 더 큰 거울을 보여주는, 얼굴 비추면 커다란 잔상으로 내 얼굴을 되비추는, 내가 뜯어먹고 자란, 부르면 수백 개의 다른 음성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자라나는 내 거울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한번도 서로의 밖을 바라보지 못한, 손 내밀면 빼앗아 사라지는, 밤이면 벗겨진 얼굴에 수은을 덧칠하는, 거울 속에 숨어 거울 만드는 사람
1972년 서울 출생
2001년 《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 한밤의 퀄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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