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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9-11-23 09:39:37, 조회 :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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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를 굽다 / 이민하      



오후를 굽다 / 이민하


창마다 방패를 두른 불빛 아래
오징어를 굽는 처녀들의 손
바싹 마른 화초를 굽는다
종일 사육해 온 수다를 굽는다
최실장을 굽는다
최실장이 오징어처럼 오그라든다
최실장의 귀를 찢고 다리를 뜯어낸다
시계추처럼 철야하며 끌고 다닌 아버지의 넥타이를 찢는다
찢어 놓은 빛바랜 필름을 씹는다
모니터를 씹고 전화기를 씹고 슬리퍼를 씹고
진공청소기를 씹는다
청소기 속으로 흡입되는 말들
그걸 주우러 입 안으로 들어오는 손까지 씹어 삼킨다
입 안 가득 비린내가
한낮을 탱탱하게 부풀린다
바늘 끝처럼 창가에서 바람의 혀가 도사린다
처녀들이 우르르 세면대로 몰려간다
재빨리 비린내가 처녀들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처녀들은 손을 씻고
비누가 처녀들을 구워먹는다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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