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에 길을 묻다 / 서영식
밖이 내다보이는 허공에서 우아하게 똥을 눈다 분주하게 걷는 사람들 머리에 구린 찌꺼기를 내려놓다가 질겅질겅 무엇을 씹으며 걷는 엉덩이를 본다 팽팽한 입 속으로 쉴새 없이 발자국을 찍어넣는 뒷굽들, 제 걸음의 흔적을 먹어치우는 그 쓸쓸한 식사를 쳐다보다가 문득, 지금 변기 속에 입을 박고 토해내는 이것이 똥이 아니라 소화 안 된 내 발자국들이었다니! 삼킨 걸음들이 입을 찢고 걸어나오고 있었다
걸음의 역류를 마친 자리, 비겁과 아양의 길에서 으깨진 발자국이 흙과 엉켜 누렇게 닦여나왔다 어디였더라, 이 걸음을 씹은 곳이
으깨진 발자국에 길을 묻는 저녁이었다
1973년 부산 출생
2005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간절한 문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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