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낯선 언어의 즐거움
육 근 웅
시의 언어가 일상어에 대한 횡포를 가한다는 말은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통하여 대상에 대한 자동화된 인식을 새롭게 변화시키게 한다는 것이다. 은유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하나의 기법이다. 뿐만 아니라 은유는 실재를 창조한다. 새로운 은유적 개념의 도입은 문화창조의 기폭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개념체계의 변화는 세계에 대한 지각의 변화와 우리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세상이 왜 이다지도
갑자기 밝고 아름다워지더냐.
새소리에 문득 깨서 커텐을 걷자
찬란하게 쏟아지는 아, 햇살
햇살.
어젯밤의 믿을 수 없는 그
황홀함으로
그대 항상 내 곁에 있음을
내 이제 확인하거니
눈부시게 하얀 시트 위에
선연히 남겨준
그대 한 방울의 그 순결한
핏자국
- 오세영 <튤립>(<<다층>> 2002 겨울)
오세영이 노래하는 튤립은 백합과의 구근초이면서 동시에 '핏자국'이다. 붉은 튤립은 그 자체로 하나의 핏자국이지만, '튤립=핏자국'으로 은유적으로 결합되어서 동정(童貞)의 처녀가 된다. 꽃이 여인과 은유적으로 결합하는 상상력은 관행을 넘어서서 하나의 사은유(dead metaphor)가 되어버렸지만 튤립과 핏자국이 만나면서 '동정'의 의미가 부각이 된다. 꽃이 피는 일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그저 자연스런 하나의 현상일 수 있지만, 교환(交歡)의 밤을 지나온 이의 가슴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요, 황홀함을 안겨주는 사건이다.
꽃은 순수이며 순결이다. 순결은 눈부시게 '하얀 시트'에서 오며, 동시에 선연한 '핏자국'에서도 온다. 따라서 순수는 희기도 하고 붉기도 하다. 그것은 찬란함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런 순수는 어쩌면 마리아 콤플렉스의 그물망에 목을 매고 버둥거리는 물고기의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오세영이 사물에 낯선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전통과 관습에 기대고 있는 반면에 박방희는 다분히 관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낯설게 만든다.
번식과정에서 볼 때 개화는
식물의 달거리 즉 생리에 해당된다
그 때 사람들이 향기라 부르는 냄새가 나고
꿀이라고 하는 끈끈한 액체도 분비된다
곤충들이 유곽 드나들 듯 들락거리는 것은
1.'마리아 콤플렉스'라는 용어는 동정만을 고집하려는 심리를 의미한다.
그것이 일용할 양식이 되기 때문이지만
식물에겐 바로 그게 섹스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은 식물이 몸속에 은밀하게 감추었다가
비로소 내놓은 내장된 성기라 할 만하다
그런데 왜 동물의 성기는 꽃이라 하지 않을까
암술과 수술처럼 은밀한 자리에 꽃 피어
서로를 수줍게 부르고 있는 그곳을
왜 언제나 사람들은 욕으로만 부를까
나는 이제 동물의 성기도 꽃이라 하겠다
나의 예쁜 그것도 꽃으로 부르겠다
- 박방희 <꽃>(<<다층>> 2002 겨울)
이 시인은 꽃을 노래하는 듯 싶지만, 그 꽃은 '성기'가 된다. 오세영이 순결을 '핏자국'과 결합시키고, 다시 '핏자국'을 '튤립'과 연결시키면서 순결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반면에 박방희의 은유는 표면적으로 이미지와 이미지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한다. '개화'를 '생리'와 만나게 하며,'꽃'을 '성기'와 만나게 하면서 은폐되고 억압되어 금기가 된 인간의 성을 음지의 담론으로부터 구하고자 한다. '나의 예쁜 그것'을 꽃으로 부르고자 하는 명명행위는 아직도 우리의 문화 속에서는 많이 낯선 작업일 것이다. 그런 낯선 흔적이 박방희에게서는 '그것'으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꽃을 완상하는 이를 두고 수줌음이나 수치를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지만, '그것'을 응시하는 이를 두고 심미안을 운운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인은 아름다운 눈으로 꽃을 보듯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예쁜' 성기를 바라본다.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얼굴을 가리운 꽃을 보다니!
성담론이 햇빛 속으로 나돌아 다니면서도 성희롱의 요건은 상대방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언어나 행동으로 확대되는 아이러니칼한 이 시대에 성기를 꽃 보듯 하는 이 시인의 눈은 어느만큼 가려질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그것의 이름이 '욕'이 되는 세상을 과연 '꽃'이 되는 세상으로 바꾸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이런 명명은 또 하나의 은폐와 억압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그것이라고 부르지 않고 꽃으로 가리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박방희의 은유가 드러내는 은폐가 자리하는 것이다. 무엇이 은폐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것'이라는 이름에 끈적끈적 들러붙어 있는 윤리일 것이다. 그 윤리가 인간화의 척도라는 점과 난혼을 방지하려는 거추장스런 규범이자, 옷이라는 점에서 모순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윤리가 인간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아무튼 이 시인이 오래도록 아름답고 즐거운 마음으로 꽃을 노래할 수 있기를 기대하도록 하자.
낯설게 만드는 장치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은유적 개념체계를 변화시키는 시인이 있다.
산도 희고 구름도 희다
여름에 눈이 온다
바다는 푸르고 그대도
푸르다
어제가 오늘이다
모를 때 안다
오오 어지럽고 팔 아픈
여름에 눈이 온다
산도 희고 바다도 희다
- 이승훈 <기문기시(奇文奇詩)>(<<다층>> 2002 겨울)
일상의 어법이 이상할 것이 거의 없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자동화된 것이라면, 시의 어법은 그야말로 이상한 중얼거림이요, 알 수 없는 잠꼬대와 같을 것이리라. '기문기시(奇文奇詩)'라는 말뜻이 요상한 문장이며, 신기한 시로 해석될 수 있는 것처럼 이 시의 논리는 평이하지 않고 기이하다. 모순적인 진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눈이 온다는 진술이 참이 되기 위해서는 '여름'의 개념이 변화되거나, 여름인 공간과 눈이 오는 공간이 서로 다르거나, 우연적인 기상이변이 일어나야만 한다.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어지럽고 팔 아픈' 시간이어야 한다. 왜 이 시인은 이런 혼란스런 상황 속에 머물며, 혼란스런 진술을 천연덕스럽게 드러내는가? 상문상시(常文常詩)를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리라. 상투적인 진술로 이루어진 상투적인 시가 자신 속에 이미 선재하는 태도를 향수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일상인들에게 아무런 각성도 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 시인은 '여름'을 갱신하고, '눈'을 갱신하고 싶은 것이다. 여름/겨울, 소나기/눈의 이분법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소나기가 눈이 되고 겨울이 여름이 되는 시간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평범한 눈으로 보면 미친 짓임이 분명한데도, 세상을 기이한 눈으로 보려는 이런 태도는 자동화된 일상의 인식의 눈을 타파하고 새롭게 눈 뜨게 하려는 것이다. 이럴 때에 여름에 눈이 오는 풍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며, 눈발 속에 피어나는 홍매에서 장광설을 듣는 만해의 기개가 엿보이는 것이다. 이제 여름의 눈발을 맞으며 우리는 어디로 떠나야 하는 것일까? 푸르던 바다마저 하얘지는 세상으로 이주해 가야 할 것이다. 그곳은 모를 때 알게 된다는 역설의 알 수 없는 나라일 것이다. 시란 무릇 친숙한 세상을 떠나 알 수 없는 나라로 인도하는 좋은 길동무이어야 참된 것이리라.
이런 의미에서 목 안에 항상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없었던 '목젖'의 이름을 다시 불러 보고 싶어하는 김강태의 노래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알 수 없네 그게 왜 젖인지 / 후두에 긴 알젖이 달려 있다는 사실, / 손거울로 아무리 속 깊이 비춰 봐도 / 웬걸, 도통 젖 같지도 않네'(- 김강태 <그게 왜 목젖인지>(<<다층>> 2002 겨울))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 시인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비록 그가 목젖에 부쳐준 새 이름인 '목꼭지'가 자칫 상투에 떨어질 위험은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시인의 사명이 친숙한 사물에 낯선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열고자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일인 것이다.
은유적 결합은 상식적으로는 한 문장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영희의 은유적 결합은 행을 넘나든다.
용서해야겠다
닷새에걸쳐
앞뒤양옆사정없이긁어놓은
자동차를본다
처음엔아이들장난이려니
둘째날엔재미가나서그러려니했다
긴선한줄씩걸쳐질때마다
누군가의마음을언제저토록아프게했을까
내가섬뜩해진다
그래서너의상처가나을수만있다면
마음껏긁어라
사람들은차를볼때마다
그누군가를욕한다욕한다
나는얼른그욕을먹는다
감히용서받아야겠다배불리받아야겠다
- 지영희 <상처>(<<문학마을>> 2002겨울)
상처는 일상적으로 대개 상처를 낳는다. 이 시의 화자는 그런 경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처를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다. 이런 마음으로 상처가 상처를 낳지 않고 용서를 낳는다. 타인의 죄에 욕이나 징벌을 가하는 것은 정의와 법의 눈으로 보면 당연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상처가 상처를 낳는 까닭이다.
화풀이 즉 분노로 그어진 자동차의 상흔은 욕이 되면서 은유적 진술이 된다. 분노의 흔적이 행을 넘어서 욕이 되면서 은유적으로 결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영희의 은유는 명사적 표현을 넘어서 서술어로 확장된다. '욕을 먹는다'라는 표현은 관용적으로는 주체의 능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수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먹는다'는 '받아야겠다'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배불리 받아야겠다'로 바뀌면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행동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욕은 용서로 변하며, '얼른'이라는 표현을 바탕으로 능동표현과 수동표현이 역설적으로 결합된다. 은유가 역설과 만나는 경계를 드러낸다. 은유가 차이의 부각보다는 은폐를 통하여 유사성을 획득하려는 인식인 반면에 역설은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동시에 유사성을 찾으려는 점에서 서로 접점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용서를 하려던 마음은 용서를 받으려는 마음으로 전환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바뀌는 역설이 태어난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십자가가 된다. 죄와 상처의 치유를 기도하는 화자의 고통은 환희로움이 된다. 자동차에 그어진 흔적은 상처이자 십자가가 되어 꽃으로 피어난다. 문인수가 침식과 융기의 작용으로 드러난 중국의 기암절벽을 두고 '상처가, 상처야말로 절경이다.'(<<다층 >>겨울)라고 노래한 절경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지영희의 자동차에 그어진 상흔의 절경만 하랴. 인간으로서 상처를 안고 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상처를 이처럼 용서를 주고 받음으로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퍼질러 싸면 독한 냄새가 나고
오래 우려 놓으면 구수한 된장 맛이 나는 것
쌓아 놓으면 똥이 되고,
사람의 밭이랑 사이사이에 뿌리면 거름이 되는 것
새벽엔 정수리에 박히는 별이 되었다가
정오에는 심장을 뚫고 나가는 화살이 되는 것
- 나종영 <시> (<<문학마을>> 2002 겨울)
시를 정의하는 일은 엘레옷의 말처럼 오류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일일 것이다. 정의라는 것이 전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은유를 바탕으로 세계를 새롭게 파악하려는 담화라는 것은 은유의 정의를 조금만 확장하면 영원한 진리가 된다. 영원한 진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을진대 그것을 영원하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만 영원이 무상한 것이라고 재정의 된다면 허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때 무상은 허무가 아니라 즐거운 변신이 된다.
나종영은 시의 변신을 이해하고 있는 시인이다. 변신은 자신을 다른 것 속으로 편입시킨다는 점에서 개방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존재에게만 가능하다. 시는 그러므로 개방이다. 따라서 은유도 개방을 지향한다. 똥이 된장이 되고, 거름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 아니다. 별이 되었다가 화살이 되기도 하는 시는 역설을 지향하는 은유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시가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싶은 욕구는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항상 유혹처럼 다가온다. 별의 유혹과 화살의 유혹이 양립하는 가운데에 자칫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 유혹은 때로는 지나친 자기개방에 의하여 자기파괴를 일으킬 수도 있음을 이 시인은 항상 잊지 않기를 바란다. 별과 화살이 어떤 표적을 지향한다는 것만으로 은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시는 자칫 모순 그 자체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가로 놓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별과 화살이 아름답게 만나는 자리에 그가 서기를 바란다.
출처:인터넷 문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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