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몇 개의 서랍을 가지고 있다 / 김경인
나를 태운 기차가 덜컹거리며 달려가요
밤은 요람인 듯 기차를 흔들고
기차는 갓난아기처럼 가늘게 울어대요
컴컴한 서랍 속에서 여자들이 쏟아져요
엄마들이 불러준 어두운 자장가가 흘러내려요
커다란 양동이에 피를 쏟고서야 어른이 된 여자애들이
하얗고 동그란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기차에 올라타고 있어요
선로 위엔 약에 취해 쓰러지는 여자들,
비명을 감추고 기차는 선로를 졸면서 맴돌아요
여자들의 풀어진 눈동자를 꽉 쥐고 나도 꼬박꼬박 졸고 있어요
서랍 속에서 구름이 터져나와요
그러면 기차는 구름 속에서 잠시 머물고
구름은 우리를 뜯어먹으며 잠 깨우지요
너덜너덜해진 구름의 입 안은 참 아늑해요
구름에 묻힌 우리들 얼굴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어요
월요일엔, 수요일엔, 금요일엔 지워진 여자들도 가득할 거예요
밤은 몇 개의 서랍을 감추고 있나요
수천 년 동안 왜 같은 서랍만 매달고 있는 걸까요
떨어뜨리고 싶어 천둥 내려치면
내 몸안에서 왈칵 열리는 검은 서랍
밤은 왜 나를 쓰다듬다 말고 검은 서랍을 매달아주나요
1972년 서울출생
카톨릭대학교 국문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2001년 계간 『문예중앙』등단
시집으로 『한밤의 퀼트』(랜덤하우스, 2007)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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