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록거울 / 전기철
악마와 식사한 후
수식어가 가득한 나라에서 망명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밤의 혈관 속에서 도둑고양이의 지린내를 맡으며
독백으로 가득한 생을 낭비한다
외로울 때는 구구단 냄새가 쌓인 주택가를 떠돌다가
침묵의 회의를 열기도 하고
멀리 침뱉는 놀이에 빠지기도 한다
한번도 내 나나를 떠나본 적 없는 나는 망명객
설명서가 가득한 얼굴로
변두리에 장난감 병원을 찰려 놓고
멸종한 인간처럼 열심히 가계도를 그려보다가
그림자들의 소음을 따라 지껄이는 농담에
원시의 고향을 그리둬 한다
무료해지면
수도꼭지를 틀어 물처럼 새어 나오는
비둘기떼를 하늘로 날리기도 하고
빈 캔에 입술을 대고 '상투스'하고 속삭여 보기도 하다
그래도 할 일이 없으면
부적을 만지며 마녀의 동그라미1) 안으로 들어간다
내 나라를 떠나지 못하지 못하는 나는 망명객
영혼을 팔 기회를 엿보며
악마와 함께 한 식사 때문에 죽은 마네킹에
인공호흡을 하자
뱃속에서 베토벤이 흘러나온다
1) 괴테의 『파우스트』 에서 인용
1954년 전남 장흥에서 출생.
전남대와 서울대학 대학원서 석.박사 과정 수료.
《심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나비의 침묵』 등과 평론집 『민족문학과 비평정신』
번역서 『시가 있는 금강경』등이 있음.
현재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며 『유심』 편집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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