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꼽점 / 김륭
그녀가 세상을 떴을 때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앉았다
주공임대아파트 베란다에 놓인 산세비에리아 화분 속으로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언제쯤 나를 뿌리칠 수 있을까, 짐은 싼지 오래였지만
슬그머니 무덤을 빠트리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면 무얼 하나 봄은 애당초 발이 없는 장르여서 다시 머리채 잡혀오는
꽃,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앉은 몸을 삐거덕 열고 들어서는
죽음 앞에서도 사랑은 피를 돌릴 수 있을 거라
나는 꽃이 아니라 화분에 물을 주었다
물고기처럼 껴입지 못한 울음이 무럭무럭 햇살을 썩히고 있었다
흙을 흥분시킬 때까지, 화살나무처럼 일으켜 세우지 못한 그림자를
거울 속에서 만나는 나는 진지했지만 죽어도 인연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죽음의 배꼽점이 사랑이었다니,
꽃이 죽을 때마다 애인이 생겼다
몸이 좀 나으면 가야지
그녀 보러 가야지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1988년 불교문학 신인상
1989년 조선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2005년 제1회 월하지역문학상 수상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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