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조정인
주걱에 묻은 꽃잎 뜯다가 울컥 뜨겁다 산다는 거
달그락달그락 밥 차리는 소리, 솥 바깥으로 덩굴지는
밥그릇 행렬이다 밥 냄새 피워 올리는 번제, 식탁에 둘러앉는 일이다
들여다볼수록 보석도 이렇게 착한 보석
쌀을 물에 담그자 숨쉬는 전설, 지도 한 장 풀린다
아현동 연탄재 깔린 비탈길 갓집 성에 낀 창유리에
손가락으로 쓰던 엄마 빨리 와, 배고파
밥, 그래 알았다 밥
당신을 무작정 허둥대게 하던, 배고프다는 말
당신의 희고 반짝이는, 잎잎이 순정한 꽃숭어리 뜯어먹고
여름숲 유리새처럼 이가지 저가지로 날갯짓을 배웠는데
신이 들판을 헤매는 인간을 위해 뿌려둔 흰 이빨*이라는
쌀을 서대문 지나 독립문 지나 아현동 지나 버스차장이 밀어낸
행상보따리에 얹고 당신은 노새처럼 대문을 들어서곤 했는데
양은 솥단지 우묵한 밤하늘엔 신발바닥 따라온 별들이 총총
더러 드문드문 밤콩 놓이던 당신 밥은, 가난도 꽤나 달았는데
구십 가까운 당신이 멜로드라마 연인들 훌쩍이는 거 보며
견딜 수 없지 고독, 무서워서 차마 마주 볼 수 없지 중얼거리신다
그랬구나, 내 밥은 팔 할이 고독이었거나
차마 마주 볼 수 없는 고독인 거구나
* 김승희 「냄비는 둥둥」에서.
서울 출생
1998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제2회 토지문학제 시부문에서 대상
시집 <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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