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 / 이윤택
- 방이 없는 자의 꿈
나만의 방이 없어
거실 마룻바닥에서 새우잠을 자는데
단발머리 고무신이 타박타박 지나간다
명옥아 명옥아
나는 그만 목이 메어 그녀를 안으려는데
꿈속에서도 너무 피곤해 안을 수 없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양철 지붕 담쟁이 넝쿨을 가리키며 비쭉 웃는다
나는 아직 집이 없어 가건물에 산다고
곧 이사 갈 거라고 주절대면서
명옥의 집을 들어서는데
흙담 벽 삭아 칼바람 드나들고
방바닥은 온통 기억속의 얼굴들이 돌가면을 쓰고 누웠다가
내 맨발을 아프게 물어뜯는다
명옥이는 뻥 뚫린 담벼락에 기대어 세상 밖을 본다
나도 가만히 다가가 그녀의 눈길을 따르는데
한 집 건너 마당에 빨래를 말리고 있는 여편네가 보이고
눈에 익은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다
고향을 떠난 삼십 년이 담 하나 사이 지척이라니……
1952년 부산에서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졸업.
1979년 《현대시학》에 〈천체수업〉 등의 시로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시민』(청하, 1983), 『춤꾼 이야기』(민음사, 1986),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세계사, 1989), 『밥의 사랑』등과
평론집 『우리 시대의 동인지 문학』, 『해체, 실천, 그 이후』 등이 있음.
'열린시' 동인이며 연극집단 '거리패' 운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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