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된 꿈 / 한석호
푸른 동굴에서 꿈을 꾸고 있어요.
양들은 철책 안에 방치된 제 살을 뜯고 있고
바람은 사냥개의 두개골을 핥고 지나와
내가 먹은 검정소의 뿔 묻은 들판을 누비며
침 흘리고 있어요 그 넓적한 혀로
살아있는 것들의 비명을 음미하는 듯
풀들은 숨죽여 내면의 고요를 되새김질하고 있네요
저기, 자동차에 치여 죽은
페르시아산 암고양이, 샛노란 등불을 켜들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뛰어와 내게 안겨요
저 어둠 속, 두 개의 구멍으로 내다보는
저 붉은 눈동자는
오래 전 멎은 한 남자의 심장이래요,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와요 내 손을 잡고
나긋이 속삭여요
나의 침실
거기 누워 킬킬대는 저 사내는 내가 아니에요
그러나 나의 아내도 아들도
충성스런 나의 삽살개도 짖지 않고
꼬릴 흔들어요
고로쇠나무 썩은 가지에 잎이 돋아요
그 잎 새 위 신은 침묵하고 태양은 눈을 감아요
시들지 않는 꽃, 우린 우화偶話의 강에 살아요
핏빛 선연한 강,
동굴 밖의 나는 복제되고 격리되고,
백과사전에서 이젠
이별 죽음 슬픔 이런 단어들 찾을 수 없어요
시험관 뱀의 방울소리, 내가 아닌
나의 동굴에서 숱한 별들이 반짝여요
물고기 뼈 위로 물이 흐르고 그 위를 물고기가 걸어 다니고
세상은 너무 고요해서 눈이 내리고,
썩지 않는 손들은 자꾸 제 가슴을 쓸어 내려요
땅위를 걷는 빛, 빛의 공간을 흐르는 시간
나는 직립의 포유류, 눈 위를 나는 꿈을 꾸어요
복제된 나의 자연에서,
1958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
경희 사이버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7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
|
테마별 시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