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詩와 음악
槿岩/유응교
건축은 조형 예술이요, 詩는 언어예술, 음악은 소리예술이다.
표현수단은 다르지만, 예술로서의 건축과 詩와 음악은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즉, 미적인 경험을 통하여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순화하고, 승화시킨다.
건축은 재료를 통한 구상화요, 詩는 언어를 통한 구상화며, 음악은 음을 통한 추상화이다.
건축은 온갖 재료를 가지고 하나의 예술품을 표현하고, 詩는 음악을 언어로 묘사하며, 음악은 詩의 내용을 풍부하고 생동감 있게 전달해 줄 수 있다.
건축이 조각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삶의 진솔한 아름다움을 지상에 나타낸 반면 ,
詩는 음악이 설명해 줄 수 없는 사건과 사물과 사상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그려내면서 이미지를 형상화시킬 수 있는 웅변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은 詩가 가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양한 소리로 표현해 내면서 인간의 깊은 심연을 움직이는 침묵 아닌 침묵이다.
건축은 詩的인 아름다움으로 창문과 벽체를 설계하고 음악적인 요소로 내부를 장식하며, 詩는 음악을 보다 더욱 이지적이고 섬세하게 만들어 주고, 음악은 詩를 보다 더욱 동적이고 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건축가가 생명이 없는 돌덩이에 생명을 불어넣어 드라마를 연출 시키는 마술사라면, 詩를 쓰고 읊는 시인은 언어의 마술사요, 지배자이며,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는 음악가는 소리의 마술사요, 지배자이다.
건축은 재료를 통하여, 詩人은 언어를 통하여, 음악가는 음을 통하여 하나의 승화된 세계를 창출하며 완성, 이룩해 나간다.
건축가는 나무와 벽돌로 집을 짓고, 詩人은 언어로 집을 짓고, 음악가는 음으로 집을 짓는다.
때로는 지상에, 때로는 우주에, 때로는 무인도에, 때로는 허공에, 바람 속에, 빛과 어둠 사이에 ... 그리하여 건축과 詩와 음악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인간의 가슴을 왕래하고, 깊은 곳에 내재하고, 높은 곳에 오르고, 넓게 퍼진다.
건축 속에 詩가 있고 음악이 있으며, 詩 안에 음악이 흐르고, 음악 속에 詩가 흐른다.
건축가는 예술적 감흥으로 조형을 하고, 詩人은 언어로 작곡을 하고, 음악가는 음으로 詩를 쓴다.
건축에 리듬과 반복과 상징, 비유, 은유가 있다면 시와 음악 속에도 이들 요소가 모두 함께 하고 있다.
동일한 모양과 크기의 창문이 반복이라면 “나는 그대를 나는 그대를 애타게 부르노라” 하는 詩의 구절 속에 반복이 들어 있고 같은 소절이 반복되는 악보 속에 반복적 요소가 들어 있음을 본다.
독수리 날개와 같은 T.W.A 공항이나 하얀 돛단배와 같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상징과 비유의 대표작 이라면 “장미 꽃 같은 그대”를 노래한 시나 비발디의 사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화려한 연주는 음악에 있어서의 상징과 비유와 은유를 잘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과 詩와 음악은 ‘건축가’ ‘詩人’ ‘음악가’라는 전문성을 띤 특정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산물만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건축가요, 詩人이요, 음악가이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창출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건축과 시와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토속건축’ ‘즉흥시’ ‘즉흥음악’으로 작품화되기도 전에 사라지고 끝나버리기가 일쑤이지만, 노력과 정열을 기울인다면 작품을 남길 수 있는 건축가가 되고,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을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기술과 훈련에 의해 체계적으로 잘 다듬고 조직화하여 ‘미화’시켰을 때 그것이 바로 작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지닌 개성과 자질, 그리고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에 의해 새롭고 독창적인 양식과 작품을 창출해 낼 수 있게 된다. 아름다운 작품을 원할수록, 위대한 작품을 원할수록, 감동적인 작품을 원할수록 시간과 고민과 고뇌와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살아가는 삶과 경험, 그 자체로서도 이미 가능하지 않을까.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위대한 건축가는 반드시 위대한 詩人인이 되어야 한다“고 건축과 詩의 가치를 동일 선상에 두었다.
일찍이 빛의 건축가 루이스 칸은 “건축은 빛을 디자인 하는 것”이라며 햇빛이 벽체에 와 닿는 순간순간 마다 경이로움에 가득 찬 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르,꼬르뷔제는 “건축이란 빛 아래 집합된 여러 입체들의 교묘하고 정확 하며 장려한 연출이다”라고 정의 하면서 그가 설계한 롱샹 교회당의 내부는 빛으로 빚은 장엄한 미사곡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신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건축이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세워질 수 없듯이 시나 음악도 인간의 원초적 내면의 세계를 표출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건축은 조각과 무용, 회화, 詩와 음악의 모든 범주를 포괄하는 종합예술로써 이 모든 분야를 감싸는 큰 원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은 삶을 담은 조각이고, 정지된 무용이며, 몬드리앙의 화폭에 나타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그리고 건축은 詩的 영감 속에 나타난 고귀한 예술품으로써 영원히 녹아 흐르지 않는 “동결된 음악”임을 우리는 가슴깊이 명심하자!
그렇다면 왜 건축가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詩를 써야 하는지를 이해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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