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려 깊은 고양이
당신은 먼 나라에서 피는 꽃이다
그러나 향기가 전해지기 전 내 종아리가 휘어졌다
당신이 식탁 위에 두고 간 화병은 주인을 기다리며 지쳐가고
반짝이는 무릎들이 훔쳐 바른 장미의 입술 색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나무 창문에 당신의 턱수염 같은 이끼가 자라고
내 눈을 뽑아다 박은 듯 허공의 눈동자가 노랗다 흐려진다
끼니를 거른 식기들이 순한 양 이름을 뜯어먹는 이 무렵 나는
저녁의 정강이 아래로 돌아올 눈 빨간 새를 생각했다
목이 타들어가는 장미가 빛으로 향해 갔던 혀를 거둘 때
내 작은 주먹은 꽃잎 하나를 힘주어 잡는다
물고기 한 마리 울고 있다
간신히 켜둔 촛불과 그 불빛 아래 흔들리는 검은 양 그림자를 두고
저녁이 발라먹은 물고기 같은 혀를 쳐낸 장미의 몰골 같은
무성한 소문만 우리들의 식탁 위에 차려놓은 당신은
뱀과 독수리가 싸우고 나무의 뇌관에 박힌 만년필이 고뇌하는
먼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이므로 나는
늙은 정원의 램프 밑에서 홀로 생리를 하고 버려진 양을 돌보고
주인공 없는 그림책을 넘긴다
물고기가 만든 웅덩이를 절룩절룩 흰 정강이들이 건너간다
무거운 내 종아리가 어둠의 풍경 하나를 꺼내놓은 후
유리벽 안 풀리지 않는 차가운 귀
모든 외로움을 빨아들인 매서운 눈구멍, 바스라질 듯
야윈 내 손은 시인이 빚어놓고 간 새 한 마리를
꼭 쥐고 있다
- 시집『손톱』(문학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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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