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의 아이들
“저, 아저씨, 제가요…….”
처음 보는 여자애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어둡고, 춥고, 눈길이었다.
2010년 1월 2일 밤 11시 20분, 컴퓨터가 별안간 다운됐다. 나는 기력이 다해 죽은 말을 내려다보는 전장의 기병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보내야 할 원고가 있고 찾아야 할 자료가 있었다. 나는 요즘 들어 많이 불어난 몸이 삐끗하지는 않을까 조심하며 아파트 입구의 경사면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눈 온다, 야호. 죽죽 미끄럼을 타면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그 애가 가로막듯이 나타난 것이었다.
“친구 집에 왔는데요. 집은 춘천이고요. 친구 아빠가 무서운 사람이라서요.”
아이는 두서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 집이 싫다는 건지 쫓겨나기라도 했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니까 있잖아요. 막차를 놓쳤나 봐요. 저, 아저씨. 제가 집엘 꼭 가야 하거든요.”
춘천이라. 막차는 끊겼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나간들 춘천 가는 차가 있나. 게다가 눈도 오는데. 이런 생각이 스쳐가기는 했으나, 여고생쯤 돼 보이는 아이는 추위에 떨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저씨, 저 만원만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차비가 모자라거든요.”
결론은 간명했다. 아마 그냥 달라는 뜻일 것이다.
“만원만 있으면 되니?”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 구리에서 12시 넘어까지 버스가 있거든요.”
11시 40분이었다. 차가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아이에게 2만원을 주었다.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얼른 가렴, 늦을지 모르니까 퇴계원 읍내로 들어가지 말고 외곽도로로 가자고 해라 ……이런 말들도 함께. 아이는 고맙습니다며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눈길을 달려갔다.
꼭 갚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전화번호도 안 받아가면서. 가게에 들러 호빵을 사들고 PC방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실내는 떠들썩했다. 여럿이서 함께 게임을 하느라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독촉 메일이 두 개 들어와 있다. 나는 해드셋을 쓰고 음악을 틀고 메일함에서 쓰던 원고를 꺼내 띄웠다. 연말연시에 원고 쓰기는 정말 어렵다.
나는 주인공을 죽일까 말까 아예 생사를 밝히지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결말과 모차르트와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소음들이 머릿속을 한꺼번에 떠다니고 있었다. 소리들이 뒤섞인 채 귓속으로 뛰어 들어와서, 마구 들렸다. 야, 총 바꿔. 이 새끼 엄청 잘 해. 장난 아냐. 녹차 한 잔 주세요. 그 아저씨 존나 멍청해. 만원 달라는데 이만 원 주는 거 있지. 헬프, 헬프. 엄호 안 하고 뭐 해? 예진이, 너 짱이다.
존나 멍청해. 만원 달라는데 이만 원……예진이. 나는 머릿속으로 그 소리들을 몇 번 따라했다. 왼 편의 세 아이 중 가운데 앉은 아이. 고개를 틀어 곁눈질로 그 아이를 확인했다. 아이는 구리로도 춘천으로도 가지 않고 동네 PC방에 와 있었다. 게다가 남자애들과 어울려 신나게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총질을 하면서 제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놓고 있었고 나는 그 무용담 속의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주인공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점잖게 꾸짖고 돈을 돌려받을 것인가. 추궁해서 부모를 불러 집으로 가게 할 것인가. 과연 고분고분 말을 들어줄까. 남의 영업집에서 소란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그러다가 드디어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놀란 눈치였다, 라기보다는 재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뭘 어쩔 것인가. 원고가 조금 더 늦어질 것 같습니다……사과 메일을 보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처로웠던 아이는 화난 듯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아이가 뒤따라와서 용서를 빌거나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사정을 털어놓음으로써 갑작스런 당혹과 분노가 그저 오해의 결과였음을 밝혀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또 한 번 멍청이가 되기는 싫었다. 열심히 PC방이나 전전하며 총질이나 하고 살아라, 하는 심정이었다. 저 아저씨가 그 아저씨야? 존나 구리다. 대가리는 까져가지고선. 등 뒤에서 희미하게 쑥덕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래, 대가리 까져서 미안하다. 올해도 담배 끊기는 글렀구만. 쉬지 않고 눈이 내리고 있었다. 차들이 눈에 불을 켜고 주렴을 젖히듯이 눈발을 헤치고 나타났다가는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십이 넘어서도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바보짓을 했다는 바보 같은 생각과, 나무람이든 욕지거리든 의당 행사해야 할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다는 울화와, 뭔가 선도해볼 수도 있었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뒤섞여서 밀려왔다. 멍청이가 되지 않기 위해 애들한테서 도망침으로써 진짜 멍청이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아저씨, 퇴계원 가는 막차 몇 시에 와요?”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아이 둘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12시가 지나 있었다.
“내일 밤 11시 반에 온다.”
“네?”
“벌써 끊어졌단 말이다. 이제 택시밖에 없어.”
퇴계원은 불과 차로 십분 거리인데도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보다는 좀 커 보이는 여자아이 모두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놈들은 뭣 하는 놈들일까. 또 게임비나 뜯어가려는 놈들일까.
“퇴계원 가는 게 아니고요. 거기서 의정부 가는 차를 타려고요.”
“그건 퇴계원에서 12시 20분이 마지막이다. 내각리엔 뭐 하러 왔는데?”
“친구가 아프다고 해서 왔는데 차 시간을 잘못 알았나 봐요. 아까 걔가 12시 반까지 있다고 그러지 않았어?”
남자애가, 대답도 하고 옆의 여자애한테 묻기도 하면서 초조해했다. 연초부터 대한민국 고삐리들이 다 내각리에 놀러 오기로 합의 봤나. 이것들이 뭔가 수 쓰고 있는지도 몰라. 예진이란 년처럼 말이지.
“막차는 갔어. 근데 택시비가 없나 보구나?”
“네. 근데, 여긴 택시도 잘 없고…….”
있다는 소리야 없다는 소리야? 퇴계원은 몰라도 의정부는 이 날씨에 가기엔 먼 길이다. 하염없이 눈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여자애의 목소리는 눈에 묻힐 듯 자그마했다.
“의정부가 집이니?”
“네.”
둘이 한꺼번에 대답했다.
“너희는 친구? 남매?”
“아니, 친구예요.”
“그래에? 그렇단 말이지…….”
나는 혼란에 빠졌다. 이놈들이 과연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내각리 사는 친구 놈의 애비가 또 무서운 인간이라면? 근데, 날도 추운데 왜들 그렇게 싸돌아다니니. 나는 진실을 좀 더 강도 높게 심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저씨가 말이다. 너희들 집에 갈 차비를 줄 수도 있다. 버스도 끊어진 것 같고. 근데, 내가 너희들 같은 애들한테 좀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 중요하단 거지. 집에다가 연락을 해볼 수는 있겠지?”
아이들은 쭈뼛거렸다. 이 녀석들 봐라. 뭔가 숨기는 게 있군.
“집에 부모님들은 계실 거 아냐?”
“안 계시는데요.”
“……그래에?”
“누나가 있어요.”
남자애가 말했다.
“그럼 누나한테 전화를 해라. 확인이 되면 아저씨가 의정부 갈 차비를 주마.”
망설이다간 네, 하고 대답하고 아이가 전화를 걸어선 건네주었다. 아이는 진덕민이었다. 덕민이 누납니까. 네. 친누납니까. 아아뇨, 덕민이는 아는 동생인데요. 그래요? 거기 의정붑니까. 네. 덕민이가 오늘 거기 가기로 했나요? 아뇨, 근데 누구시죠? 아무튼 친동생이 아니군요. 네. 나는 휴대폰을 돌려줬다. 불륜 현장에 서 있기라도 하듯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친누나가 아니구나. 왜 거짓말을 했니?”
아이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맞고 서 있었다.
“부모님은 왜 안 계시니? 그건 참말이니? 의정부가 집이 맞긴 해?”
아이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실이 멀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허탈했다.
“아저씨는 너희들한테 차비를 주고 싶다. 어쨌든 집엔 가야 할 테니까. 근데 너희들 말을 믿을 수가 없구나. 집으로 갈지 딴 데로 갈지도 모르겠고, 부모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기는 힘들겠다. 어떻게 차 시간도 모르고 이렇게 늦게까지 남의 동네에서 놀 수가 있니?”
차갑고 어두운 침묵이 흘렀다. 그때,
“아저씨한테 돈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말수가 적던 여자애가 조그맣게 말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 그렇지. 그렇구나……그건 그래. 미안하다.”
나는 더듬거렸다.
아이들을 남겨둔 채 도망치듯 정류장 부근의 치킨집으로 달려갔다. 호프를 시켰다. 물론 차비 달라곤 안 했지. 그건 그래. 나는 맥주를 콸콸 들이켰다. 하지만 한 마디도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나쁜 놈들.
치킨집 사장이 밖에서 들어와 눈을 털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 ‘배달의 기수’ 스타일 다 구겼습니다. 엄청 쏟아지네요.”
그러곤 호프를 한 잔 따라 들고 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지난 한 시간 동안의 일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장이 큰소리로 말했다.
“글마들 절대로 돈 줘선 안 됩니다. 다 삐끼들이니까요. 요 동네도 집 나온 알라들 많아요. 저거들끼리 어울려 댕기면서 사고나 치고, 학교도 안 가고……막차 시간만 되믄 그런 짓들을 한다니까요. 싹수가 노래요. 아, 지놈들이 할 게 공부 말고 뭐가 있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선생님?”
“그렇긴 하지만……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
할 게 왜 공부밖에 없겠는가. 그 나이는 뭐든 다 하고 싶은 나이다. 공부만 빼고 말이지. 아이들의 무력하리만큼 순해 보이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렸다. 내가 왜 그랬을까.
“아, 처녀가 알라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 카는데, 사정이야 있겠죠. 마, 요새 결손가정도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랄수록 그라믄 안 되죠.”
오늘 밤 나에게도 사정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차비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하던 여자애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차 시간을 물은 것뿐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리고 묻는 말에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돈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라고 한 적은 없지 않은가. 내가 왜 그랬을까.
“잠깐만요. 좀 나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은 거기 없었다. 아예 길에 사람이 없었다. 그때, 눈발을 헤치며 707번 버스가 달려와서 멈춰 섰다. 12시 35분이었다. 나는 열린 출입문에 대고 소리쳤다.
“이 버스 어떻게 된 겁니까? 막차가 왜 이제 와요?”
귀찮다는 듯 기사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새해부터 한 시간 연장 운행합니다. 몰랐어요?”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이밀고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고단한 얼굴들이 군데군데 떠 있었다. 아이들은 없었다. 호프집에 머문 건 십오 분 정도. 배차 간격은 삼십 분 정도. 얘들이 대체 어디로 갔지?
“아, 탈 거요 말 거요?”
나는 차에서 힘없이 물러섰다. 버스는 눈밭에 파묻히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기우뚱거리며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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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