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門 1
-학골 길씨 할아버지 용
학골
길 끊어진 마지막 마을
여호와의 증인에 나가는 길씨 할아버지 사신다
일찍 상처하고 남자몸으로 아들 오형제를
흙부뚜막에서 밥지어 학교시키고 다 출가시키시었다
홀로 농사지으며 홀로 끓여 드신다
까만 가죽 성경책을 사랑하시고
여호와의 책자 파수꾼을 늘 넘기며 계신다
일요일은 제일 기쁜 여호와의 교회에 가는 날
양복을 꺼내 입으시고
잠금장치가 망가진 까만 서류가방을 옆에 끼시고
산길 반시간을 내려와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신다
반질하게 닳은 양복과
테두리가 뱅 돌아 벗겨진 까만 서류가방을 첨 봤을 적엔
할아버지와 상관없이
물건들이 변천하는 제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이 먼저 눈을 찔렀다, 일테면
物이 된 모든 것의 오늘 일은 존귀함이 그 기원이리니, 어쨌든
할아버지는 자그마하고 말랐고 고우시고 조용하시다
수줍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줄곧 웃음 띠신다
손만이 농투성이의 손답게 검붉게 불거지셨다
낡은 넥타이로 바지 허리를 맨날 쩌매고 계셔도
할아버지는 여러 가지로 참 신사다
여호와의 할머니 교우들이 와 도와준 땅속 김장김치를 퍼 가게도 하셨고
살구도 장대 두드려 따게 하고 감자를 캐 가게도 하셨다
특히 파수꾼 책자를 억지로 건네주거나 하지 않으시는 점
그 표지그림 속 사과 같은 얼굴로 사과열매 따먹는 낙원으로
모두 함께 가야만 한다 잡아끌거나 하지 않으시는 점
암만 생각해도 깨끗한 참 신사의 면모
얼마 전엔 평상을 살구나무 아래 마련해 놓으셨는데
할아버지네 집 평상이 그 골짝의 사랑방이다
살구나무 잘 뻗은 가지에 용문우체국 우편함이 다 걸리었다
여호와의 기쁜 소식뿐만이 아니라
이 골짝 일생 파수꾼들을 위한 기쁜 소식이 그래도 스며드나 보다
빨간 우편함 입에는 자주자주 할아버지 길씨 성 앞으로
흰 접시꽃잎들이 날아와 물리기를 원해 본다
바르셨던 할아버지의 허리 이미 많이 꼬부라지셨다
마당둑에 한껏 모가지가 긴 흰 겹접시꽃
소복소복하게 제 꽃송이의 사다리 놓으며 올해도
하늘나라, 할아버지의 젊은 아내에게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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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