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방 / 윤이산
어느 쪽이든 입구야
소문처럼 드나들 수도 있지
구름의 방은 잠겨있지 않거든
슬쩍 샛길로 난 문고리를 당겼어
바람의 안내도 있었지만 최적밀도로 틀어박힌
권태가 부추겼다는 게 더 솔직하겠군
이부자리처럼 대기 중이던 그,
잠가 둔 내 감각에 열쇠를 꽂더라구
중력을 버려, 버려 봐, 달팽이관을 흔드는 그의 애무가
나를 무장해제 시켰어 바람 든 내 몸이 완전 연소될 때
날 잡고 있던 도덕 같은 거,
한줌씩 내다버렸지
익명으로 밀거래를 끝낸 우린 자진 해산했어 이 바닥 불문율이야
해의 눈알이 cctv처럼 떠 있는 오후,
뭘 잘못 먹은 것처럼 잠시 구역질은 하겠지만
쾌락의 시간을 실토하는 실수 따윈 저지르지 않을 거야
구름은 이미 몸 바꾸었을 테니깐 알리바이가 사라지는 거지
누구든 한 번쯤 낯선 방을 다녀온다는 소문이
새삼 쇼킹한 사건은 못 되잖아?
다시 안정된 걸음으로 배정 받은 노선을 걸을 거야
정장을 입고 갤러리에 들르거나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도 가겠지 마트에서 잘 익은 과일을 고르고
야무진 밥상에 불륜의 드라마를 동동 띄운 후식도 낼 거야
체위를 바꾼 구름의 방에 다시 들를 때까지
반복의 인생을 견딜 거야
당신도 한 번쯤 구름의 방에 들러 봐
중력의 끈을 놓고 고름 짜낸 듯 가벼워져 봐
구름이 가끔 치명적인 돌풍으로 몸 바꾸기도 한다는 충고 따윈,
잠시 잊는 게 좋아
1961년 경북 경주 출생.
2009년 《영주일보》신춘문예당선 |
|
테마별 시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