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서 아침 사이에 / 김충규
죽은 자가 혀로 새의 등을 쓰윽, 핥는 소리
허공에서
막다른 허공에서
미래를 모르는 새가, 다른 하늘 쪽으로 빠르게 휘어진다
다른 하늘 밑에는 다른 세상이 풍성하게 익어있지만
이 세상에서 다른 세상까지 걸어서 가는 길은 없다
날개만이 닿을 수 있는
죽은 자가 부르는 흥겨운 노래를 듣고 싶은 저녁에,
내게 아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저녁에,
죽은 새끼를 낳아놓고 연신 혀로 핥아대는 암소같이
죽은 자의 등이라도 핥고 싶은 저녁에,
걱정 마, 당신 죽으면 새로 환생할 테니
당신은 늘 다른 세상을 열망했으니
이 세상으로 날아오면 혀로 깃털을 핥아줄게
순한 애인에게 속삭이는 사내의 음성,
그 사내는 나일까 나의 그림자일까
새를 부르지만, 새는 내게 한 번도 날아오지 않고 휙 스쳐 가 버리고
가끔 꿈속에서
내가 날개를 펴는 소리,
그 소리에 화들짝 잠을 깨곤 해
누가 내 등을 핥는 소리,
당신 깃털이 참 따뜻해, 다정히 속삭이는 소리
누구세요?
아침에, 내 잠자리에 흩어져 있는 깃털들
내가 새를 품고 잔 것인지?
새가 나를 품고 잔 것인지?
혹은 내가 새로 변했는지?
단지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아침에,
햇살을 깨물며 지저귀고 싶은 아침에,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98년 《 문학동네》문예공모 시 당선
시집 『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물 위에 찍힌 발자국 』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오월문학상 수상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 |
|
테마별 시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