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제도, 이대로는 안 된다 / 金鶴
21세기가 열리는 첫해다. 마디가 생기려면 대나무가 심한 진통을 겪듯 3년 전 우리는 전대미문의 아픔을 겪어야 했었다. 이른바 IMF라는 고난이었다. 아직도 그 후유증마저 싹 가신 것은 아니다. 이 나라 이 백성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 성한 데가 없다시피 하였다. 직장이 무너지고, 가정이 파탄 나고, 개인이 결딴나는 게 예사였다. 실업자가 2백만 명에 육박하고, 노숙자가 늘어나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처절한 불행이 이 땅을 휘감고 있다.
자고 나면 기업은 부도가 나고, 월급쟁이는 일터에서 쫓겨나며, 가게는 문을 닫았다. 철가방이라던 공무원조차 구조조정의 칼날에 맥없이 쓰러져야 했고, 재벌마저 해체되거나 통합되는 게 예사였다. 세상에 온전한 게 하나도 없어 보였다. 결혼할 때 열쇠 서너 개는 받아야 한다던 의사 변호사 등 사자(士字) 항렬의 직업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적 가치가 재편되는 회오리바람이 바로 IMF였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우리의 문단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동인활동은 옛날이나 다름없이 활발하고, 문학단체의 연례행사인 관광지에서의 세미나나 해외 나들이도 여전하며, 작품집 발간도 크게 줄어든 것 같지가 않다. 문학이 IMF를 사는 독자에게 위안과 평화와 희망을 주어서일까? 대견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21세기를 맞아 이제 한국문인협회의 집행부도 바뀌었으니 우리 문단의 등단제도를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문학의 모든 장르도 대동소이하겠지만 우선 내가 몸담고 있는 수필분야부터 알아보자.
수필의 경우 몇몇 지방신문의 신춘문예를 비롯하여 몇 개의 월간·격월간·계간·문예지를 통한 신인상 또는 추천제가 신인을 배출하는 창구구실을 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에 의해 매달 수십 명의 수필가들이 배출된다. 이들 등단 수필가들의 작품 수준 역시 고르지 않다. 객관적 잣대가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수준이 높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등단을 시켜서는 안 되는 저질작품도 버젓이 등단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내놓는다.
문예잡지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경쟁하다 싶이 습작기간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사람을 끌어모아 등단의 월계관을 씌워 준다. 잡지 운영비를 조달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래서 우리 문단에도 사정이란 정화의 바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갓 등단한 신인들에게 백여 권의 잡지를 사도록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인가? 이러한 등단제도의 문제점이 바로 한국문단을 부패의 고랑으로 떠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서글프다.
새로 자랑스럽게 등단하는 이들이 문예지나 수필전문지의 소매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많은 신인을 배출한 문예지가 점차 동인지로 전락해 가고 있다. 자기 잡지에서 배출한 신인들의 작품을 많이 게재하다 보니 그리 되는 것이다. 또 자기 잡지에서 배출한 신인들을 대상으로 동인회를 만든다. 끝까지 그 잡지와의 유대를 갖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절차탁마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섹트를 형성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IMF한파에 부도가 난 문예지나 수필 전문지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잡지가 태어나고 있다. 잡지 발행인들의 경영능력이 뛰어나서일까 아니면 소득이 증가한(?) 문인들의 잡지 정기 구독률이 높아져서일까. 또 등단 심사제도만 해도 그렇다. 문예지나 수필 전문지의 등단 심사위원들이 신인들의 원고를 제대로 읽어보기나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원고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책에는 버젓이 심사위원이란 이름으로 인쇄되어 나온 것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
요즘은 그런 방식도 사용하지 않는다. 심사위원단의 연명을 쓰고 있다. 편법이 난무한다는 이야기다. 잡지 편집자가 혼자서 다 하면서 남의 이름만 차용해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름을 빌려주는 분들이 우리 수필문단에서 꽤 지명도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수필문단의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문단의 지도자들이 그래서야 후배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이름만 빌려주는 심사위원이라면 우리 수필문단을 위해서 더 자중자애 해야 하리라 믿는다. 아무리 사정이 닥하다 해도 대의를 위하여 소아를 버릴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검찰의 사정 칼날에 피바람을 일으키기 전에 자숙해야 할 것이다.
잡지 발행인은 물론 심사위원의 명단에 끼는 사이비 심사위원의 반성이 촉구된다는 이야기다.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비해 문예지나 수필 전문지의 등단제도는 여전히 반성의 여지가 많다. 과정이 너무도 허술하기 때문이다. 심사비도 지급하지 않는 심사, 원고도 보여주지 않는 심사, 신인들에게 많은 책을 강매하는 출판사, 이런 절차를 거쳐 문단에 얼굴을 내미는 신인…. 이게 어찌 떳떳한 수필가의 배출제도란 말인가. 또 잡지마다 신인상 심사위원 선정의 기준도 일정하지가 않다. 등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하는가 하면, 편집자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골라서 쓴다. 그러니 신인상 수상자의 수준이 고를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런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한국문인협회가 나서는 게 좋을 듯 싶다.
운동경기에서도 심판의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 심판을 맡기듯 각 장르별로 문협이 일정 수준을 갖춘 문인을 대상으로 신인상 심사위원 자격을 부여하고, 모든 잡지는 문협이 인정한 심사위원 중에서 심사위원을 위촉하도록 하면 어떨까? 문협이 인정한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등단한 신인만을 문협의 회원으로 가입시킨다면 요즘보다는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릇된 관행은 과감히 배격되어야 한다. 과거의 관행이 과감하게 파괴되는 사법부 파동, 법조계의 비리가 보이지 않는가? 우리 문단도 법조계의 비리 혁파에서 무엇인가 깨달은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문단도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란 이야기다. 부조리한 현행 등단제도가 21세기까지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감한 혁파가 필요하다.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를 꼼꼼히 읽어보라. 기명기사(記名記事) 제도가 유행하고 있다. e-mail주소까지 밝히고 있다. 그 기사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에서 기명기사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의가 있는 독자나 시청자는 바로 그 기사를 쓴 기자에게 문제제기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등단제도에서 심사위원으로 이름만 빌려준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 그것은 명예가 아니라 수치다. 아니 우리 문단에 죄를 짓는 범법행위다. 의사나 약사 또는 변호사가 이름만 빌려준다면 어찌 되겠는가를 따져보면 그 해답은 자명할 것이다. 형사문제로 비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듯하다. 법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고 치부하면 될까? 오늘날 우리 문단, 아니 더 좁혀서 수필문단의 정화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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