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間) 22
1
역삼동 어느 조그마한 식당입니다
갈비탕을 시킵니다
자리에 앉기도 전
그림 한 폭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찌나 맑고 고운 물이 골짜기로 흘러드는지
넋을 잃고 쳐다봅니다
살짝 뛰어들고 싶습니다
몰래, 식당주인의 눈치를 본 뒤 몸을 구부려
그림 가장자리, 그러니 붓 터치가 두터운 개울둑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주방에선 달그닥, 그릇 씻는 소리,
화장실에선 쏴, 물 내리는 소리.
하지만 그림 속에는 주걱모양 꽃다지가 지고
너머 논둑엔 금마타리, 비비추, 모시대가
몸을 꼬아 피워 오릅니다
개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깜짝 놀랍니다
여름풍경에 물이 얼음장 같으니까요
하지만 불덩이 같은 내 발을 잡아주는
개울의 손바닥은 참으로 시원합니다
2
이제 홀의 TV소리도 작게 들려옵니다
계속 손님들이 들어오는 듯하지만,
문 여닫는 소리
그림 속 뒷산 메아리처럼 가늘어집니다
갈수록 붓 터치가 여려져가는 저 너머 골짜기엔
하나 점으로 끝나는 오솔길이 있습니다
길은 자전거 한 대나,
둘이서 팔짱을 끼고 걸으면 딱 맞을 너비입니다만
화가는 많은 걸 생략했나 봅니다
구불구불, 점으로 끝나질 않고
캔버스 너머 뒷산들을 넘으니까요
3
난 세 도시의 경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쪽에도, 저쪽에도 내 집은 없습니다
이 길 끝엔 단칸방이지만 개 한 마리 키울 마당 있는
오두막 한 채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이제 그림 밖,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질 않습니다
그림 안, 개울물소리조차 들은 지 오래니까요
갈비탕이 식기 전, 오두막과 맞닥뜨립니다만
왠지 문고리 당기기가 두렵습니다
그 집 주인이 나였으면 했지만
막상 당기면 내가 들어 있을 듯해서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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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