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사막에 가다 / 김경선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한 사내가 손을 잡아챈다 그 남자는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고 우긴다 잠결에 웬디 손을 잡고 다른 페이지로 도망간다 검은 터번을 쓴 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후크선장의 왼손 갈고리는 늙지도 않는다 팅커벨 수다는 여전하다 정적을 깨는 숨소리가 다가온다 전갈의 꼬리가 피터팬을 가소롭다는 듯 쏘아본다 불행한 사막은 물 젖은 꿈을 건져낼 갈퀴를 제공하지 않는다 피터팬은 다시 한 번 꿈속에 무겁게 가라앉는다 갈증은 사막에 대나무 숲을 그려 넣고 전갈의 꼬리에 물방울을 그려 넣는다 몸이 굼뜬 늙은 피터팬이 스텝을 놓친다 스텝을 밟는 동안 비비꼬이는 것은 몸이 아니라 꿈이다 인디안, 핑크 빛 노을을 예견하는 동안 목마름은 벌컥벌컥 물을 들이킨다 사막과 함께 젊음을 놓고 한 판 게임 중이다 발칙한 마술에 걸려 천만년을 눈먼 채 살아가도 좋을 것 같다 팅커벨, 가끔 내려와 인적 없는 모래언덕에서 깃털을 가다듬고 뒤숭숭한 꿈자리를 신기루처럼 털고 날아간 다. 모래 속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발자국 하나가 벙어리 흉내를 낸다 신기루를 핑계로 날아든 불온의 사유 하나가 꿈속을 점령한다 금빛신기루 한 주먹을 입에 털어 넣는다 음모를 철회하지 않는 꿈은 끌어당길수록 달아난다 손을 놓친 웬디가 다시는 보이지 않는다 이가 빠진 피터팬 잠꼬대 중이다 시간이 자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모래 바람이 인다
인천 옹진군 출생
2005년 <시인정신>으로 등단
<젊은 시인들> 동인
수주문학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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