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아! 엄마야.
온 산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도 힘없이 떨어져 발 아래 수북하고, 나뭇가지에 외롭게 달려있던 잎
새도 심술부리는 바람에겐 이길 수가 없는지 안간힘을 쓰다 결국은 떨어져 버리는구나.
아마도 바람은 겨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혜원아.
가는 계절을 붙들고 싶은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계절은 언제나 변함없이 제 할 일을 다하지.
변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계절은 우리에게 온 몸으로 말한단다. 우리는 계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마음의 귀로 들어봐야
할거야. 혜원이도 들어볼래?
봄은 무슨 말을 해 줄까?
봄은 우리에게 겨우내 얼었던 대지를 뚫고 고개 내민 새싹을 통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꿋꿋
하게 이겨내라 말하고, 또 예쁜 꽃망울을 터트려 고운 마음을 가지라 하지.
그리고, 여름은 타버릴 것 같은 뜨거운 햇볕을 잘도 참아낸 곡식에게 알맹이를 살찌게 해주고, 때
론 재해를 일으켜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사고에 미리서 대비하도록 따끔한 경고를 주지.
너도 알다시피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경고를 무시하지만 말이야.
가을은 뭐라 말할 것 같니?
가을은 눈길이 닿는 곳마다 단풍을 곱게 물들이고, 1년을 땀흘려 일하신 농부에게는 한 아름 기
쁨을 안겨주어 우리에게 땀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낙엽을 밟으면서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라고
말하지.
마지막으로 겨울은 어떻니?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고운 눈을 내려주어 거짓과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어 우리 주위의 이웃을 둘러보게 하는 가르침도 주고, 지나온 1년의 시간을 반성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주잖니?
이렇듯 계절은 우리에게 '자연에게서 배우라'는 교훈을 몸으로 보여 주고 있단다.
혜원아!
지금은 겨울이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엿보고만 있는 늦가을인데, 바람은 더 차갑게 불어서 옷깃
을 여미게 하고 자꾸만 몸을 움츠리게 하는구나.
언제나 이맘때만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한결같이 입을 모으지만, 엄만 조금 늦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 주위의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려면 추워지기 전에 미리 살펴봤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은 초등학생인데도 엄마가 학교 다닐 때와는 다르게 학교로, 학원으로 너무 바빠서 미처 주
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도 없겠지만,엄마가 혜원이에게 바라는 것은 아직은 순수하고 깨끗한 너
의 눈동자에 아름답고 고운 모습만 담고, 마음씀씀이는 '나'만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고, 아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었으면 하는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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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 죽어가는 소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담벼락에 아무리 세찬 바
람에도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을 그려 놓고는 그만 숨을 거둔 늙은 화가처럼, 그렇게 이웃의
아픔도 같이 아파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음 참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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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