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1.
엄마를 닮아 엄지발가락이 큰 은지는 양말의 엄지부분에 제일 먼저 구멍을 낸다 공사장에서 한쪽 팔을 잃고 허리를 다친 아빠는 순대 빛 입술에 차가운 바늘을 물고 그 유전된 구멍을 질긴 나일론실로 매워주고 싶지만 사팔뜨기 눈으로 몇 번을 쑤셔도 뜨거운 침이 발린 실은 미끌미끌 바늘귀를 스쳐가기만 한다
자장면이 배달되고 한쪽 양말로 뛰놀던 은지가 돌아오고 까만 국물이 뺨까지 올라와 얼굴 위로 파리들이 왱왱거릴 즈음, 아빠는 조심스레 콘돔 하나를 꺼낸다
은지는 아빠가 불어준 풍선을 들고 논두렁엘 간다 뒤뚱거리는 살색 풍선엔 뽀송한 나비들이 다닥다닥 붙는다
2.
매상이라야 고물봉고차 기름 넣고 자장면 시켜먹으면 동전 몇 닢 달랑거리지만 집과 직장, 자가용이 해결되니 불만은 없다 우직하던 해가 빠지고 가로등에 하루살이들 붙고 국도변 러브호텔에 휘황찬란 불 들어오면, 은지는 바람 빠진 풍선을 홱 던져버리고 2인승 양철지붕 밑으로 기어든다
조수석의 은지가 위인전의 성인과 성인용품에서의 성인의 차이를 물어오는 날엔 운전석의 아빠는 은지가 그냥 다섯 살 철부지로 남았으면 하지만, 엄마를 보고 싶어 할 때마다 불어주는 풍선을 몇 개씩이나 불어줘야 하는 날엔 하루 바삐 성인이 되었으면 한다
달보다 더 밝은 가로등불 아래 은지는 쫓아다니며 먹이는 자장면 서너 젓가락만큼이나 더디게 자라고, 깁다가만 양말 한쪽은 바느질 몇 땀을 남겨놓고 아빠의 입속에서 축축해져만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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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