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푸르기스의 밤* / 최형심
축제의 밤이 문설주를 돌아나갔다. 모잠비크 흑인주술사는 카라코룸에서 막 실종되었다. 누군가 늑골 하나를 뽑아 향로에 꽂는 순간,
오늘밤 크베들린부르크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 책 두 권을 드라이클리닝 맡기셨지요? 칸트와 헤겔에서 관념을 쏙 뺐어요. 유리너머에서 이빨이 막 돋은 물고기가 웃는다. 남자는 위험한 휘발성 용매예요. 말없이 책을 받아들고 소녀는 걸음을 재촉한다. 사거리를 지나기도 전 가슴이 봉긋 솟았다. 거울 앞으로 다가간 소녀의 입술은 인질로 잡혔다. 단추 두 개를 몸값으로 떼어주고 성숙한 여인으로 풀려난,
여자는 토론을 저녁상에 올리고 싶어했다. 밥상 위 특설무대를 꿈꾸는 그녀. 후식으로 푸딩대신 달을 준비했어요. 체온을 벗고 비늘을 입은 등을 보인다. 남자의 돌발적인 식욕을 여자는 도발적으로 간을 한다.
창밖으로 별들이 각기 다른 체위로 달아오르는 밤, 식물의 추억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여자는 제자리에서 자꾸자꾸 늙어간다. 흰머리를 한 움큼 뽑아 빗자루를 만든 그녀, 침대를 쓸어버린다. 여자의 손에 식탁이 사라진다. 집이 쓸려나간다. 거리의 야채가게들, 슈퍼마켓이 사라진다. 별빛을 머리에 꽂고, 빗자루를 탄 소녀가 가볍게 날아오른다.
* 발푸르기스의 밤 :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마녀들의 축제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 수료.
2008년 <현대시>등단
<젊은 시인들>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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