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닭의 항변(抗辯)
오일장에서 튼실한 암탉 한 마리를 식구들 입맛다실 양으로 산채로 사왔다.
닭맛은 역시 넓은 가슴과 엉덩이가 팡팡한 촌닭이어야 한다.
부엌에 무릎굽혀 앉혀놓고 부리 앞에 보리쌀 몇 줌 던져놓고
물을 끓이면서 목을 칠 칼을 갈고 있다.
어라, 이놈이 먹이는 쳐다보지도 않고 멀뚱멀뚱 나를 꼬나보고 있다.
심히 토라진 눈초리다. 알아서 해라. 조금 있다 보자. 그렇게 칼을 갈고 있었다.
‘한 마디만 하게 해주시오, 제발..’
헉, 뒤로 돌아다 봐도 아무도 없는데 말소리가 나다니 내 눈이 먼저 휘둥그레 졌다
그때 암탉이 고개를 쳐들어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보며 말했다
‘몇 마디만 묻겠는데, 대답해주고 나서 나를 구워먹든가 삶아먹든가 알아서 하시오’
내심 놀라고 겁이 나서 눈앞이 캄캄했지만 손에 칼이 있지 않은가, 조금 더듬거리며 내가 말했다.
‘좋다, 하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접어라,
너를 여기까지 오게 한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짧고 간명하게 말해봐라.‘
‘당신네들이 나를 잡아먹을 이유가 내게는 조금도 분명하지 않소.
나도 이 세상 나왔으니 내 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 맞지 않겠소?’
어라 이놈 봐라, 닭 주제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 좋다. 말을 받아주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너도 알다시피 오일장에서 너를 만원주고 사왔다. 그러니
너는 나의 소유이며 우리 밥상에 오르는게 당연하다. 식구들이 너를 그리워한다.‘
‘나는 그 놈의 돈 만원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소.
나의 허락없이 내 생명을 종이 한 장으로 주고 사다니
그것은 생명 존중하는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는 처사 아니오?‘
‘머라? 네가 닭 주제에 생명존중을 말하다니, 아주 시건방진 닭이로구나. 잔말 하지마라.
나도 너를 사기위한 돈을 벌기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얼마나 많은 노동을 했는지 알기나 하냐?’
칼 쥔 손에 힘이 간다.
‘그건 알 바 아니오, 다만 당신 목숨만큼이나 나도 하나밖에 없는 내 중요한 목숨이란 말이요.’
닭이 눈을 준엄하게 뜨며 목을 쳐들고 대들듯 말했다.
‘좋다, 네가 인간사까지 거들먹거리며 떠들고 이야기 하는데 그럼 생명에 대해서 한 마디만 하겠다.
무릇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란 살아있는 생명을 먹고 살아야 할 운명, 그리고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너도 살아있는 벌레들 메뚜기며 지렁이를 먹지 않았느냐? 곡식 낱알은 말할 것도 없고.’
닭이 내 말을 듣고 눈을 살짝 지그시 감고 조용히 말했다
‘그렇소, 당신네들이나 우리 닭들이 모두 살아있는 것에 의지해서 목숨을 연명하는 것은 맞는 이야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있는 모든 것이 다 당신네들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우리들은 죽어서 설령 뼈만 남았다 손치라도
다시 썩어서 벌레의 밥이 되고 식물도 되고 더 작은 벌레도 되고 거름도 되오.
하지만 당신네들은 관에 담겨서 아주 썩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불에 태워 바람에 날리지 않소?
그렇게 보면 당신네들이 다른 생명을 먹기만 했지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는 것 아니오?’
이 암탉이 눈을 치켜뜨며 지금 자기의 생명에 대한 존중심을 심히 불러 일으키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내 손에서 칼을 내려놓게 할 심사다. 이대로 물러서면 이놈을 먹을 때 가시가 내 목을 찌를 것이다.
마지막 히든카드를 써야할 때다
‘그럼 이것 하나만 묻자, 왜 너는 지금 이 자리에 나의 칼 밑에 목을 대고 있느냐.’
그러자 닭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도 그것이 궁금하오.’ 나는 손에서 칼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 녀석 눈에 수건을 덮고 목을 잡아 두 번 돌려 비튼 다음 날개 밑으로 모가지를 넣고 눈감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날 저녁 식구들이 김이 모락모락나는 큰 냄비 주위로 모여 앉았다.
뚜겅을 열자 고추장으로 잘 볶아진 풍성하고 싱싱한 닭볶음이 요리되어 있었다.
자연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다음 나도 정신없이 먹느라 바뻐서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시원한 소주 한 잔이 뒤에 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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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 (운영자 : 시마을동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