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
사춘기를 벗어날 무렵,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태어난 날,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될까?
그 날은 눈이 솜이블처럼 내리던
아버지의 생일이었다.
친구를 구하려다가
자신의 목숨을 던진 날,
아홉 식구의 목숨을 내동뎅이 쳤다.
마지막 유언은
"어머니, 어머니" 그리고 두 마디 다음에
눈물이었다.
의로운 죽음 앞에 어떤 조사도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기에
돈으로 산출한 목숨 값이었다.
사기를 당했다.
할머니의 먼 육촌쯤 되는 사람이
고리의 이자를 주겠다는 말에
육 개월은 이자만 받고, 연락을 끊었다.
그 돈은 사업자금이라는 거짓말 뒤에
딸, 아들의 결혼자금으로 쓰였다.
쉽게 들어 온 돈은 쉽게 날아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돈이 아버지의 목숨값이었다는 것이
나의 뇌리에 슬픔으로 각인 되었다.
가난은 대를 이어 가난이었다.
가난한 줄 모르고 나를 이끌었던 힘은
아버지가 두고 간 아홉식구들의 목숨이었다.
가족은 한 방에 싹을 틔운 나무다.
얼퀴설퀴 뿌리를 내려 토양의 자양분을 먹고
환경의 물을 빨아들이면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 내는 힘이다.
삭풍이 부는 겨울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봄의 꽃이 향기를 품고 피어나는 것은
겨울을 이겨 낸 뿌리다.
가족은 초원의 온실이었다.
성장은
저마다의 하늘을 욕심껏 품은 욕심이었다.
가난한 줄 모르던 가난이 씨가 자라
가난은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다.
사람은 한계점에 다다르면
우주가 팽창해서
수많은 별로 쪼개져 빛을 내었다.
별과 별 사이, 밤보다 더 까만 밤의 틈은
이 만큼의 외로운 섬을 만드는 일이었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불행의 씨였다.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
그 속살이 까맣게 타들어 가 씨를 뿌리는
아버지의 죽음 뒤에
뿔뿔이 흩어져야 할 숙명이었다.
해바라기가 필적에는
한 무리의 땅을 나누어 서로를 보듬어야 할
저 대지의 자식들이 있었다.
슬픔은 의로운 죽음을 잊었듯이
슬픔은 슬픔 뒤에 일상으로의 빠른 회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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