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없는 편지 - 친구에게
살갗으로 파고드는 바람이 예리하게 가슴에 남는, 이울어 가는 가을 저녁,
이토록 허전함이 깃드는 건 너를 그리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겠지.
친구야 안녕!
너무도 오랫동안 불러보지 못한 너의 이름 감히 이곳엔 적질 못하겠구나.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한 때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을 기억하며 마음으로 너의 이름 크게 불러본다.
난 너무나 잘 지낸다.
이미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 둘 건강히 잘 자라고 있고
여전히 시어머니 모시고 남편과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다.
전에는 매일 다녔던 병원 일 지금은 가끔 만 다닌다.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아이들도 건강이 좋지 못한 어머니도 한몫했지만, 쉬엄쉬엄 다니는 일이어서인지 마음에 여유도 있고, 개인적인 취미 생활도 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게 편히 살고 있는 내 얘길 너에게 할 때면 그 죄스러움이 몇 곱은 더해진다.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늘 너도 나를 그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산다. 감히 이제는 너를 찾을 수도 없는 시간의 공백이 너무 커 어느 날 너와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많이 망설이고 당황할지도 모르지.차라리 그렇게 어느 날인가라도 부딪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쩌면 난 너무나 감사할지도 몰라. 그렇게라도 만나 응어리진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풀어 나갈 수만 있다면 매일 기도할텐데.
친구야 지금의 네 모습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직도 어둔 세계에서 너 자신을 잃고 살아가고 있을까?
예전에 한 번 너무나 네가 보고프고 그리워서 부모님께 전화한 적이 있었다.
그땐 여전히 정기 치료는 받지만 교회도 잘 다니고 웃기도 하고 친구도 사귄 것 같다 말씀하셨었는데. 나와 전화통화는 거부했단 말씀에 이젠 정말 너와의 인연으로부터 작별을 고해야 하는 걸까? 와르르 가슴이 무너졌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난 또 얼마간은 너를 잊고 가정을 지키며 지금껏 지내왔다. 하지만, 잊자고 다짐했던 맹세도 이렇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유독 네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한다.
사실은 아주 가끔 이렇게 너에게 붙이지도 못할 편지 썼었다. 그런 식으로 쓴 편지 상자 안에 쌓여 가고 있어. 어떤 희망 하나 움켜쥐고 나도 몰래 놓지 못하고 있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네가 미야! 하고 찾아 와 날 끌어안아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 있기 때문이지. 우리 일하던 곳이 달라 자주 못 만나 어쩌다 시간이 맞아 만날 때면 서로 이름을 부르며 마주 끌어안아 줬잖아. 그리고 꼭 보고 싶었어! 라고 말했었지. 난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희망 하나 놓지 못하고 있다.
친구야,
어쩌다 너에게 그런 암담한 병이 다가왔느냐고 원망의 소리를 하늘 어딘가를 향해 질러댄다. 너의 마음을 무엇이 그리도 황폐하게 했는지 사회를 원망해보기도 한다. 너의 정신세계를 무엇이 갈가 먹고 있는지 끝없이 되묻곤 한다. 그럴 때 마다 얼마나 비통한지 모른다.
어린 날부터 사회 초년까지 너와 다짐하고 꿈꾸고 계획했던 소녀들만의 이야기가 얼마나 많니.
기억나?
중학교 때 머리 맞대고 앉아 고민했던 둘만의 심각한 대화. 어떻게 앞으로 살아갈 건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 건지, 결혼은 꼭 해야만 하는 건지, 정말 아이를 우리가 낳을 수 있을까? 에서 남자를 꼭 사귀어야 하는지 등등에서 이론을 배웠으면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갔던 지구는 왜 둥근지, 왜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까지 우리의 고민은 끝이 없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참으로 엉뚱했다 싶어. 그냥 받아들이고 그런가 보다 여겼을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우리에겐 의문의 대상이었는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그런 의문을 다시는 품지 않을 거야.
좀 더 여학생다운 호기심을 충족시킬 거다.
미팅을 해보고 남자 친구도 사귀고 재잘재잘 많은 친구와 수다 떨며 놀며 지낼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지. 아쉬움과 후회만 쌓인 일들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너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음에 감사한 일들.
어느덧 세월은 눈가의 늘어가는 주름에 한숨을 쉬는 나이가 되었다.
탈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너에게 주어지지 못한 그 삶을 아파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라도 살아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친구야 지금 이 시간이면 너에겐 어떤 시간일까?
정말 잘 지내고 있으리라는 믿음 하나로 붙이지 못할 이런 편지로나마 너를 그리워한다. 이 마음을 반이라도 전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
다음에 쓰는 편지는 너에게로 보낼 수 있는 편지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반가운 새소리를 들을 때 혹 너로부터의 소식은 아닌가 하는 설렘이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나를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너의 이름 가슴 깊이 새기며 펜을 놓는다.
안녕 내 아름다운 친구.
|
|
편지, 일기 (운영자 : 이혜우)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삶을 위한 에세이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