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의 나라에 내리는 비 / 박주택
비가 내리는 거리 알 수 없는 말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은 땅
에 떨어진다 그러는 동안 수염은 자라 수심 깊은 곳에 팔랑거리
는 꽃잎들을 모은다 비, 한없이 마음을 비워야만 젖어오는 것, 웃
옷과 바지 밑 가랑이부터 차올라야 비로소 비로 덮일 수 있는 것,
여기로부터 저 높은 구름의 나라에까지 혹은 점점 지쳐가다 적막
앞에 서는 것
그렇다면 우글거리는 사람들의 잠의 끝에도 꽃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필 수 있을까 악수를 받아 일어서는 적막, 살 부러진 우
산, 비는 안경에 붐벼오고 부딪는 어깨에 텅 머리가 비어도 오는
데 평화는 적막 끝에 이르는 것인지 생은 희미하게 피어, 대낮처
럼 투명을 가장하여 다가오는데
가장 은밀한 비명을 말하려는 듯 머뭇거리는 입술 사이를 비는
온다 비는 거리를 뛰어넘으며 온다, 희디흰 젖내 나는, 젖꽃판 위
로 철철철 장마처럼 온다, 막무가내 초라해짐을 이기려고 머리
카락 날카롭게 세우며 잡히지 않는 말들을 잡으며 온다
충남 서산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198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꿈의 이동건축』,『사막의 별 아래에서』외
시론집『『낙원회복의 꿈과 민족정서의 복원』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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