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지지 않는 別辭·2 / 오졍국
1
숲을 지나오고 보니,
어느 나무 아래서 비를 맞았는지 모르겠네
당신을 사랑했던 일도 그러했으니
땅바닥에 무릎 꿇고
빗물을 핥네
누더기 같은 몸 하나 여기에 부려놓고
산 계곡으로 계곡으로 아랫배를 밀고 가면
목구멍엔 짐승처럼 붉은,
붉은 물이 들이차고
이렇게 멀리 흘러왔으나
아직도 내 가슴의 우거진 나뭇잎을 뚫고 가는
붉은 물의
진흙들
2
뒤돌아보면, 강가의 나무들이 끊어질 듯 휘어지고, 강가의 돌들이 하
얗게 소리치고, 그 해 여름 장마는 그렇게 지나갔던 것이지요 내 이렇
게 멀리 흘러왔으나 문득 뒤돌아보면, 산허리의 붉은 흙이 또 흘러내리고
3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하여
나무 한 그루를 사랑했었네
나뭇가지 뻗어 있던 그만큼의 그늘에서
내 일생 이렇게 늙고 말았네 그 집 울타리의
나뭇가지들, 아스라한 가지 끝에 해와 달이 열리고
우산처럼 펼쳐지던 희디흰 꽃잎들, 그때마다
이 가슴에 멍울 지던 아그배나무 내 사랑,
남몰래 고요히 목매달고 싶었지만
발밑만 보고 중얼중얼 노래 불렀네 그리하여
어느 날 그 어느 날
그 나무에 열매 맺힐 때,
내 일생의 혼잣말을 어떻게 그렇게 견뎌내려고
붉은 열매 맺을 때,
아그배나무 그 나무를 베어버렸네
195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1980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됐으며, 1988년 <현대문학>시 추천을 받았다.
시집으로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이 있다. 대한매일신문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아리랑TV 기획위원. 중앙대 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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