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적 실사구시 / 최원식
"콜리지는 우리가 작품 속에 들어갈 때 '불신의 자발적 정지'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문학이 인간학이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면, 비평가를 포함한 우리문인들이 남의 글을 읽을 때 좀더 이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의도적인 오독, 착독이 우리 문단의 한 병폐인 듯하다." (최원식)
문학평론가 최원식(42, 인하대 교수)씨는 한국 비평의 두 세대를 가르고 있는 바다 위에 외로운 섬으로 떠있다. 대개 60년대에 등단해서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세계의 문학} 등의 계간지를 주도했던 4·19세대 비평가들이나 80년대 벽두의 사변을 겪고 분단 이래 처음으로 비평의 '과학주의'를 표방한 유신 세대의 비평가들과 달리, 그의 또래에는 세대의 깃발 아래 무리를 지을 만큼 많은 수의 비평가가 없었다. 그와 동세대 비평가로는 그보다 두 해 손위인 김흥규·김종철·오생근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이들이 70년대 후반처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 않아, '한글 1.5세대'라고 부름직한 그 세대의 비평의 짐이 온통 그의 어깨 위에 얹혀 있는 것 같다.
최원식씨는 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서 등단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창작과 비평> 79년 봄호에 실린 [우리 비평의 현단계]를 실질적인 데뷔 평론으로 꼽고 싶어한다. 백낙청씨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김종철씨의 {시와 역사적 상상력}, 조동일씨의 {우리문학과의 만남}, 구중서씨의 {한국문학사론} 등 78년에 나온 평론집 네 권에 대한 서평 형식의 이 글을 통해 그는 자신이 '창비 진영'의 일원임을 분명히 했고, 실제로 세 해 뒤인 82년에는 창작과비평사의 편집위원이 됨으로써 이 진영의 중추가 됐다.
그 무렵에 출간된 그의 첫 평론집 {민족문학의 논리}는 "비평가의 명쾌한 논리와 예민한 감각이 국문학자의 전문적 식견과 결합됐다"는 백낙청씨의 말마따나 조선 후기이 가사, 신소설, 식민지 시기의 문학 등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울 법한 영역에 비평적 조명을 비추고 있다. 그러니까 그는 조동일 김흥규 등과 함께 70년대 민족문학론을 국문학 연구와 제휴시킨 공로를 나누고 있는 셈이다.
반드시 그의 전공을 반영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의 문체는 여러 세대의 '창비' 비평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백낙청 식의 장중하고 유려한 번역문투에서 비켜서 있다. 주어를 명시하지 않고서는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서양문학자의 신경질이 그에게는 없다. 그 대신 그는 관형절의 중첩이나 부사절의 나열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또 화려한 수사벽이 없다. 그가 허용하는 수사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한 한자어들이 이따금씩 빚어내는 '낯설게 하기' 정도일 뿐이다.
비교적 짧은 문장의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그의 비평은 그래서 간결체의 한문이나 백화문을 번역해 놓은 것 같다. 그의 문장엔 때깔보다 文氣가 유별난 것이다. 요컨대 그의 문체는 강직한 선비의 문체이다. 그가 자신의 분발을 다짐하며 "章句나 따는 썩은 선비의 누습이 고황에 들었다"({민족문학의 논리} 서문)고 자탄할 때, 또는 월북 작곡가 김순남의 불우한 만년을 설워하며 "옛말에 선비는 죽일지언정 모욕주지 않는다고 일러왔"([생산적 대화를 위하여], {창작과 비평} 91년 여름호)음을 상기시킬 때, 그는 마치 선비로서의 자기 규정을 내비치고 있는 듯도 하다.
그의 비평은 민족민중문학론의 이념적 스펙트럼의 가장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평이 염무웅씨보다는 물론이거니와 때때로 백낙청씨보다 더 온건해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민족해방문학론자들처럼 남한 사회를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것에는 물론이고 민중적 민족문학론자들처럼 미국의 신식민지로 보는 데에도 반대한다. 그 반대를 표명한 글 [강압의 시대에서 지혜의 시대]로(<창작과 비평> 90년 겨울호)에서 그는 남한에 진출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상호 각축과 모순 속에서 남한 정부의 상대적 자율성은 증대한다고 진단하고, 민족모순이나 자주화의 과제는 중세 이래로 있어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을 '민족주의 좌파' 또는 우스갯소리로 '창비 우파'라고 부른다. 민족주의 좌파에 대한 그의 자기동일시에는 일제 하 신간회 운동이나 해방기의 좌우합작운동에서 민족사의 본류를 발견하는 그의 시각이 투영돼 있다. 동서 양 진영에서 '보수'와 '개혁'이라는 단어가 서로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이 전환기에 그가 추구하는 민족문학은 현실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극복하는 제3세계적 관점에 서 있지만, 그는 제3세계라는 말의 일반적, 전일적 사용에 반대한다.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는 풍요로운 사상적, 문화적 재부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제3세계와는 확실히 다르다. 동아시아의 그런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제3세계 문학론은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시즘 이전의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자강적으로 모색한 실사구시의 논리가 우리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또 작품이 비평에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이 작품에 복무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비평을 넘어서는 작품들이 많이 나와야 비평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새롭게 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91.11.24.)
해석, 번역 양대 관점 통일 지향 / 성민엽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용으로 하는 합리성이 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는 맥락에서 보면 문학은 빈곤하다. 그러나 바로 그 빈곤성의 자리에서 문학의 세계의 지배 원리에 대해 혐의를 걸고 이의를 제기하며 그것을 부정한다. 그렇게 하는 문학의 원리는 합리성이 아니라 인간의 총체성, 혹은 총체적 인간이다." (성민엽)
80년대의 맨 처음에 광주가 있었다. 광주는 문학과 함께 있었고, 광주가 문학이었다. 그 문학은 우선은 시였다. 한 미학자의 말투를 흉내내 유행된 "광주 이후에도 서정시가 쓰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한탄을 기화시키며, 그리고 시가 완전히 문학의 주변부로 몰려났다는 한 비평가의 70년대 말의 진단을 배반하며 시와 시인들이 80년대 앞부분의 문학계를 점령했고, 그것은 '시의 시대'라는 저널리즘적 규정을 탄생시켰다. 이 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80년대는 시의 시대 못지 않게 비평의 시대였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87년 6월 이후 명확히 도래할 비평의 시대의 예열기였다. 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에 태어나 청년기에 4·19를 맞고 한국의 비평언어를 확립한 한글1세대---이어령이 '제3세대'라는 모호한 말로 묶은 60년대 작가들의 동년배인---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계승, 극복할 듯한 일군의 비평가들이 바로 이 시기에 한국 문단에 착지했다.
70년대 말에 데뷔한 장석주, 권오룡, 정과리에 이어 김정환, 김사인, 성민엽, 이동하, 구모룡 등이 평단에 나왔고, 채광석, 이재현, 현준만, 김명인, 김태현, 민병욱, 진형준, 임우기, 홍정선, 황광수, 이윤택이 여기에 합류했다. 그들 모두가 광주의 자식이었지만 아비의 유지를 어떻게 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선 생각들이 달랐다. 그 생각에 따라 일부는 변혁, 실천의 길로 줄달음쳤고 일부는 해석, 반성의 길로 다가갔으며 또 일부는 그것들을 '종합'하고자 했다.
명백히 <문학과 지성>의 자장 안에 있던 무크 <우리 세대의 문학>에는 이 '종합'에 관심이 있던 비평가 여섯명이 시차를 두고 모여들었고, 6월 항쟁의 결과로 더 이상 정권이 계간지 발행에 시비를 걸지 않게 되었을 때 이들은 <문학과 사회>라는 계간지를 발족시켰다. 권오룡, 성민엽, 임우기, 정과리, 진형준, 홍정선의 '문사' 동인들은 그들이 종합을 표방했다고 하더라도 그 입각점은 '문지'에 있었으므로 70년대의 '문지'에 내려진 '자유주의'라는 딱지까지 힘께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자유주의'는 질베르 뒤랑이나 마르트 로베르같은 서유럽적 현란함에서부터 민족민중문학의 온건한 부분까지를 포괄하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것이었다.
성민엽(35, 충북대 교수)씨의 비평활동은 <우리 세대의 문학>이 내세운 '종합에의 의지'---이 비평가가 뒷날 표방한 바로는 해석과 변혁의 통일---를 아마도 가장 근사하게 실천에 옮겼왔다. 그 의지는 그의 초기 글들인 [문학 종합무크의 현황]이나 [민중문학의 논리]같은 데서 이미 드러나는데, 그는 84년에 쓴 이 글들에서 자신의 견해를 체계적이고 일관된 형태로 드러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검토, 정리하고 그것의 의의와 한계를 지적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개진하고 있다.
70년대 '문지/창비'의 대립을 '시민적 전망/민중적 전망'이라고 정리한 [문학 종합무크의 현황]은 백낙청으로부터 '창비'가 내세웠던 것은 오히려 특정한 의미에서의 '시민적 전망'이라는 '자백'을 받아냈고,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의 기초가 되는, 결코 서로 다른 것이 아닌 bourgeois와 citoyen의 분리는 필경 시민적 이데올로기로 귀착될 하나의 이념형을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 [민중문학의 논리] 역시 백낙청의 진지한 대응으로 이어진 바 있다.
그는 유중하와 함께 우리 문단에서는 보기 드문 중문학 전공의 비평가이다.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비평가로서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중국의 교조주의적 좌익이 중국문학에 끼친 해악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좌편향으로부터 보호한 것 같기도 하다.
<문학과 사회> 창간호에 실린 그의 [전환기의 문학과 사회]는 진보적 문학진영으로부터 일정한 비판을 받은 글이지만, 그럼에도 이 시대 문학과 현실에 대한 주목할 만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글에서 남한 사회의 미래전망에 대해 예속독점자본--파쇼군부독재의 지속, 아류제국주의--형식적 민족주의로의 변화, 비부르좌적 민주사회로의 혁명적 변환 등 세 개의 길을 가정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오늘날 소시민 계급의 열망의 대상인 아류제국주의--형식적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부문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수렴돼버리는 까닭에 문학의 비판적 해석이 거의 유일한 체제비판적, 체제부정적 영역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적극적 사회기능의 획득 못지 않게 자율성의 덕택으로 문학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문학의 두 측면이 해석과 변혁의 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글의 요지이다.
이 달 말로 만 10년이 되는 성민엽 비평이 실천에 대한 관심을 포기한 적은 없지만(그의 첫 평론집의 제목이 {지성과 실천}이다), 그것은 그 실천을 위해 객관적 현실이나 사실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경계한다. '이론적으로 선취된 대중'에 대한 불신, 수기는 문학이 아니라는 단언 등이 그런 경계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합리성과 선동성의 빈곤에서 문학의 힘을 발견하는 관점 역시 이 세대의 조급한 실용주의자들로부터 그를 구별시킨다. (91.12.8.)
민족적 관점으로 '민중시대' 선포 / 염무웅
"진정한 필연성의 기초가 허약한 상태에서 입버릇처럼 노동이니 계급이니 통일이니 하고 외치는 상투화된 습성은 이제 버려야 한다. 낱말 하나를 쓸 때에도 우리는 거기에 피 한 방울, 적어도 땀 한 방울 흘리는 고통을 걸어야 한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염무웅(50, 영남대 교수)씨의 글쓰기는 임헌영의 그것과 함께 4·19세대 비평의 왼 날개를 이룬다. 그의 많은 동료들이 시민적 자유와 꿈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하던 70년대에 그는 과감히 '민중시대'를 선포하고 민족적 관점의 확립을 강조함으로써 해방기와 80년대를 연결하는 과학비평의 좁다란 교량이 되었다.
백낙청과 함께 '창비 학교'의 평론 파트를 이끈 이 비평가에 따르면 "오늘 우리 문학의 목표는 한마디로 건강하고 풍성한 근대적 민족문학의 수립"이고 "문인 일개인의 입장에서 그가 오늘 어떤 문학관을 가지고 어떻게 문학을 한다는 것은 그의 삶의 전중량이 걸린 일대 실존적인 결단의 결과이며, 민족문학 전체의 입장에서는 말하자면 민족의 진로와 결부된 일대 역사적인 선택"([식민지 문학관의 극복문제], 1978)이다. 그런데 그가 보기에 우리나라 역사에서 3·1운동 이후에는 민중이 민족운동의 유일한 주체가 된다. 그러니, 그에게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염무웅 비평에서 경직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물고늘어지는 것은 삶에 대한 이 비평가의 지사적 태도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흔하게 그 증거로 내세우는 것은 "위대하지 않은 삶이 위대한 문학을 낳을 수는 없다. 요컨대 본질적인 것은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며, 이 삶의 무게가 작품 속에 올바르게 운반될 때 그것은 작품 자체의 무게로 전화되는 것"([시와 행동], 1976)이라는 선언이다. 삶의 함수로서의 문학을 위대하게 하는 세계관이나 창작원리는 무엇인가? 이 비평가에게 그것은 말할 나위 없이 리얼리즘이다. 73년에 쓴 [리얼리즘의 역사성과 현실성]은 발자크의 {인간극}이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의 승리', "세부의 진실성 외에도 전형적 환경에서의 전형적 인물들을 진실하게 재현하는 것"이라는 리얼리즘의 전형론 등 논의의 일정 부분을 엥겔스에 기대며 리얼리즘의 여러 층위를 검토함으로써, <사상계> 70년 4월호의 좌담 '4·19와 한국문학'(구중서, 김윤식, 김현, 임중빈 참가)이 촉발시킨 70년대 리얼리즘 논쟁을 일단락짓고 있다.
그의 이론비평이 받아들이고 있는 이런 사회역사적 소명은 그의 실제비평에도 고스란히 옮아간다. <산문시대> 시절의 동료인 김현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고 암시된 서정주와 김수영에 대해서 그는 "그의 秘敎的 관념세계는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현실의 디테일 위에서는 결코 건설되지 못한다…… 서정주가 지금 시적으로 실패하고 있다는 데에는 이의없이 동조할 수 있다"([서정주 소론], 1969)거나 "김수영은 한국 모더니즘의 위대한 비판자였으나 세련된 감각의 소시민이요 외국문학의 젖줄을 떼지 못한 도시적 지식인으로서의 그는 모더니즘을 청산하고 민중시학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알았으되, 혁명이 또한 탁월하게 군중적인 것을 충분히 알지는 못하였다"([김수영론], 1978)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군사파시즘이 사회 전체를 옥죄고 있던 시기에 그의 화장하지 않은 문장이 실어나르는 이런 전언들이 당대 지식인들의 양심을 일깨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협 일각의 천박한 매카시즘이 '창비' 비평에 끊임없이 용공의 혐의를 걸고 싶어했을 때, 그것이 겨냥한 것은 하버드 출신의 영문학자가 아니라 독문학을 전공한 국문학 교수였다(그는 70년대에 서울대 전임이 될 뻔했다가 당시 서울대에 재직하던 한 원로 교수-시인의 작품세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글이 문제가 돼 발령을 받지 못했고, 73년부터 덕성여대 국문과에서 가르치다 76년초 교수재임용 제도의 첫케이스로 해직됐으며, 10·26 뒤인 80년 3월부터 영남대 독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80년대 들어서 그의 비평활동은 그 이전처럼 활발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이 기간 동안 독문학 쪽 공부에 더 힘을 쏟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삶만이 위대한 문학을 낳는다"는 15년 전 자신의 명제에 대해 그는 "그 '위대한'이란 말을 '진정한' '충만된'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그 세월 동안 자신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고, 탈중심의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 지형의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는 요즈음도 이 비평가는 역사의 진보와 재조정에 대한 낙관을 잃지 않는다.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은 응당 그럴만 해서 일어났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이 한 차례 지나가면 계급노선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것이다. 마르크시즘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은 아주 비역사적인 것이다. 중세가 끝났을 때 카톨리씨즘이 함께 끝나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그는 완고한 계급론자나 정치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민중문학이 결코 배타적인 개념이 되어서는 안될 것"(두번째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 서문)이라는 언명이나, 민족문화의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윤이상보다는 서정주를 더 중시하는 그의 입장을 그 증거로 내세울 수 있겠다.
"멋있는 문장, 색깔 있는 문장 이전에 표준적인 문장이 먼저 확립돼야 한다. 한국어는 아직 그런 교과서적 문장을 확립하지 못했다. 고등학교만 나와도 누구나 쓸 수 있는 증류수같은 문장 말이다. 언젠가는 문장론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9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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