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예술 하나됨 위한 '살림' 주창 / 임우기
"'형성하는 리얼리즘'은 전통적 형식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지양하는 계기를 지우고 마침내 실현시킨다. 그 리얼리즘은 그래서 장르들 사이의 구분을 희석하며 그것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형식을 계발해가면서 과학적인 '장르의 확산'을 이루어낸다. (임우기)
유신 시기에 수태되고 5월 이후에 분만된 80년대 비평이 과학의 기치를 쳐들었을 때 그 과학이란 마르크시즘 또는 정치경제학의 다른 이름이었다. 상부구조에 대한 토대의 궁극적 우위를 승인하고 세계의 개조를 철학의 임무로 받아들이는 것이 거친 대로 마르크시즘의 틀 안에 있는 사고방식이라면 80년대 비평가로서 마르크시즘과 절대적인 적대관계를 가진 사람은 아주 드물다. 민족민중문학진영의 비평가들은 물론이고 흔히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대개는 마르크스의 유산을 각자의 몫에 따라 분배받았다. 마르크시즘을 표방하고 마르크시스트로서의 자의식이 있는 명시적 마르크시스트말고도 그런 자의식이 없거나 미약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가르침대로 사고하는 묵시적 마르크시스트들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적서논쟁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 모두는 마르크스의 후예들이다.
문학평론가 임우기(35)씨는 80년대 후반에 <<우리시대의 문학>>을 통해 활동했고, 지금은 계간 <<문학과 사회>>의 편집동인으로 있다. 그러니까 그는 누가 보더라도 세칭 '자유주의' 계보에 속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의 어떤 마르크시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계급노선을 수락한다. 그는 최종심급에서의, 상부구조에 대한 토대의 우위를 인정한다. 그는 문학이 세계를 반영하면서 아울러 세계의 변개를 시도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마르크시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가 더 좋아하는 말은 '살림의 세계관'이라는 말이다. 그의 첫 평론집의 표제가 되기도 한 '살림의 문학'을 떠받치는 그 '살림의 세계관'이란 "질곡에서 신음하는 삶과 생명의 희생을 희원하고 실천해가는 생명주의 관점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러한 관점의 필연적인 한 귀결로서 민중적 다원주의, '공동체적' 다원주의에 바탕한 세계관"({살림의 문학} 서문)이다. 그리고 그 살림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살림의 문예형식'은 '박제된 리얼리즘' 형식 속에서 추구되어야할 성질의 그 무엇이다. 삶과 문학의 혼연일체를 꿈꾸는 '살림의 문학'을 담보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그는 자신이 '형성하는 리얼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독자적인 리얼리즘론을 '솔거의 그림'에 비유해 설명한다. 그 '비유'에 따르면, 솔거의 황룡사 노송도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새가 날아와 앉으려다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설화 속에서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그 그림이 잘 그려진 사실화라는 점이 아니라 새가 그림에 부딪쳐 떨어졌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새(현실 생활세계) 사이를 벽이 차단하고 있는데, 이 벽이 극복될 때 '새'와 '그림'은 서로를 '살리는'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살림의 비평'은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문제삼으면서 그 경계의 자유로운 넘나듦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얼리즘이 어떤 예술적 틀이나 도식성을 끊임없이 거부하며 새롭게 '형성해가야' 하며, 좋은 문학은 현실 생활이 그 안에 깃들 수 있는 많은 '구멍' 또는 '샛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도식성의 거부와 '생활이 넘나드는 예술'에 대한 강조는 이문구의 '수필적' 소설, 김지하의 마당굿적 문학이나, 현실 허구의 해체를 꿈꾸는 이인성의 소설에 깊이 몸담그는 평문들을 낳는다. 그렇다는 것은 임씨가 루카치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에 의해 점화된 루카치와 브레히트 사이의 30년대 리얼리즘 논쟁에서 명백히 브레히트의 손을 들어주고 있음을 뜻한다.
임씨를 주도적 마르크시스트와 구별시키는 섬세함은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그는 민중적 민족문학론을 비판하는 자리에서 민중적 민족문학론자를 역시 지배이데올로기 영역에서 문학 행위를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문학영역에서의 지배이데올로기의 침투는 노동문예에까지 관철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민족문학론과 지식인작가의 위상', 1988)하기도 했고, 박노해와 백무산의 시들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노동의 소외는 자본으로부터만이 아니라 노동 내부로부터 온다는 것. 즉 그 소외는 정치경제적인 것에서부터 문화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노동시의 현재와 미래', 1990)하기도 했다. 특히 뒤의 지적은 이를테면 혁명 이후의 사회에서일지라도 모든 형태의 가치의 순위가 철폐되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노동 내부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관계'의 문화를 창출하자는 것으로, 체제변혁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의식의 근원적 개조를 겨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동년배 비평가들 가운데 정과리 김진석의 작업을 평가하는 말미에 "그들은 삶과 역사의 탄생과 죽음을, 존재성과 부재성을 동시에 문제삼는 깊이와 넓이를 지닌 비평가"라고 말함으로써 자기 세대 비평의 양상과 목표가 '예술과 삶, 전체에 대한 통찰'임을 암시했다. (91.12.22.고종석)
한민족 특수성에 애정 쏟아 / 임헌영
"민중 주체의 문학, 노동자 주체의 문학에서 주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문학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민중문학, 노동자문학이 전진하기 위해선 창작과정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즉 사전의 많은 토론과 상호비판이 필수적이다. 활자화하기 전의 그런 번잡한 과정 없이는 대중문화를 이겨낼 수 없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임헌영(50)씨는 대학에 자리잡지도 않았고 중심적 계간지를 주도하지도 않았다. 대학이나 저널에 둥지를 틀지 않은 비평가가 거의 없는 사회에서 그런 사실은 그를 매우 독특하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언뜻 그가 동세대 비평의 주변적 흐름에 실려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70년대 이래 비평적 담론의 주류가 민족문학론이라는 빨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면, 그리고 민족문학을 향한 다기한 모색과 쉼 없는 연찬이 리얼리즘론으로 수렴되고 있다면, 임헌영씨의 글쓰기는 70·80년대 비평의 추축을 이룬다. 그 자신이 연루되고 개인사의 중요한 마디가 된 74년의 문인간첩단 사건과 79년의 남민전 사건 자체가 척박한 민족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지만, 민족적인 것에 대한 그의 애착은 유별난 바가 있다. 그 자신이 언명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신채호나 정인보가 민족주의자라는 의미에서 그를 진지한 민족주의자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의 무게 중심이 그의 민족주의보다 오른편에 있을 때 그는 위험스러운 좌파로 보였고, 80년대 후반에 우리 문단 일각에서 목소리를 높인 레니니즘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될 때 그는 복고풍의 우파로 보였다. 변해온 것은 그의 민족주의가 아니라 그때그때의 이념적 지형이었다.
그는 물론 리얼리스트이다. 왜 리얼리스트가 됐느냐 하면 "리얼리즘은 참된 미학의 결정체요,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예술의 극치이며, 휴머니즘의 대변자이기 때문"([한국문학의 과제])이다. 그러나 그의 리얼리즘은 '민족적' 리얼리즘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미의 테제는 "민족적 차원에서의 주체성 회복"이기 때문이다. 엥겔스의 발자크론에서 발원해 루카치에 이르러 굳건히 구축된 정통 리얼리즘론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것을 추종하는 대신 민족문학사의 내적 동력 속에서 리얼리즘의 줄기를 더듬어 올라가며 그가 정립하고 있는 '민족적 리얼리즘'은 그것의 구체적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민족적인 것에 대한 그의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민족적인 것에 대한 그 집착은 그가 "문학예술은 근본적으로 세 가지의 범주 위에 이루어진다. 보편성, 특수성, 개별성(작가의 개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은 특수성으로 이것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포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학예술의 기본원리가 된다"([한국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며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강조할 때 전형적인 모습을 띤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월의 [진달래꽃]이 드러내는 정조는 보수이지 전통이 아니며, 보수와 전통은 너무도 먼 거리에 있다고 주장([보수와 전통])하거나, "전통적인 우리의 예술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것이 현대성과 민중성이 없다면 오늘날의 참된 민족문화가 될 수 없다"([민족문화예술의 정의])고 단언함으로써 민족적인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복고주의와 구별한다.
그의 민족문학론이 복고주의와 대척적이라는 사실은 그가 78년에 쓴 [전환기의 문학]에서 노동자문학이 민족문학의 확대와 심화를 위한 또하나의 예술적 이정표라며 노동자문학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을 때, 또 소박하고 추상적인 정의로 눈가림하기는 했으나 "당파성을 참여론의 종착역으로 삼지 않으면 안될 것"([참여와 어용])이라고 말했을 때 거듭 확인되었다. 특히 '노동자문학의 지평'이라는 부제를 단 [전환기의 문학]은 해방기의 진보적 문인들과 80년대의 채광석, 이재현, 현준만, 백진기 사이에 놓인 거의 유일한 본격 노동문학론이다. 그것은 그가 71년에 쓴 [태평양의 고아 필리핀 소설]에서 제3세계문학에 주목한 사실과 함께 임헌영 비평이 내딛어온 행보의 전위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민족적 리얼리즘은 예술의 일반원리로서의 리얼리즘에 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접맥시켜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더 다듬어지고 정교화되어야 할 이론이지만, 예전보다 지금 더 유효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권의 대변혁이 민족운동을 고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우리 문학은 변혁 지향의 문학이든 문학을 위한 문학이든 개화파의 논리, 즉 근대화의 논리를 좇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 민족사의 특수성을 간과하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80년대가 비평의 시대라는 명제를 가능케 한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비평가 수의 급증이다. 한 통계는 80년대에 등장한 비평가의 수가 신문학 이래 80년대 이전까지 문단에 나온 비평가의 수를 넘어섬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이 시기에 생산된 평문의 양이 신문학 이래 최대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나 자신도 일조를 했지만, 80년대 들어와 비평이 논문화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어 걱정이다. 비평이 문학적 창조행위라는 사실이 망각된 채, 예컨대 각주가 달린 석사 논문이 비평적 업적으로 계산되고 있다. 그것이 80년대 들어와 비평이 작가나 독자들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 이유이다. 87년 이래의 민족문학논쟁이 우리 문학사의 지축을 흔들었음에도 그 당사자들이 뒷감당을 못한 것은 그것이 창작품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91.12.29.)
결정론 비판, 상호침투 존중 / 정과리
"비평활동을 시작할 때 좋은 작가와 시인 바로 곁에 있었다는 것이 큰 복이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그 작가, 시인은 이인성씨와 이성복씨다. 그는 또 "계간지 <문학과 사회>가 우리 문학사에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과리)
1960년대에 등단해서 70∼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김우창, 백낙청, 김현 등의 거장들을 그들답게 한 특질 가운데 하나는 다스리기 힘든 욕심이었을 것이다. 욕심이 없었다면 그들이 견고하고 웅장하게 구축한 문학의 성채, 그들이 견고하고 웅장하게 구축한 문학의 성채, 그들이 흔들림 없이 유지한 비평언어의 과점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국비평사에 그들의 이름을 또렷이 섭새김할 그들의 욕심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군인정치가들이 지배한 그 시기의 암울함을 정당한 문화적 자만심으로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다.
80년대에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 정과리(34, 충남대 교수)씨는 과장된 겸손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욕심이 엿보이는 비평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79년에 이 독특한 필명으로 등단했고 군 복무 기간중인 80년대 초에는 정다비라는 필명을 사용하기도 한 그는 <문학과 지성> <우리 세대의 문학> <우리 시대의 문학> <문학과 사회> 등의 무크와 계간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인상적인 속도와 스케일로 자신의 비평적 진지를 구축해왔다.
'존재의 변증법'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나온 정씨의 평론집 세권의 표제나 부제를 이루고 있는 데서도 암시되듯이 그가 생각하기에 문학이란 존재의 변증법이다. 문학 속에서 "글쓰기 주체의 존재의 계속적인 움직임(이) 글읽기 주체의 존재의 움직임을 자극하며, 서로 함께 얽혀 삶에 대한 물음과 대답의 변증법적 공간을 형성한다"(첫 평론집 {문학, 존재의 변증법} 서문). 그렇다는 것은 일단 정과리 비평이 크게 보아 김현 김치수 등이 표방한 '공감의 비평'의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그의 초기 글인 [소집단 운동의 양상과 의미](1983)는 70년대 '창비/문지'의 대립을 '현실에의 몸담음/현실에의 반성적 질문'으로 파악하고 그 상호보족성을 강조하면서도 때때로 필자의 목소리를 대립구도의 뒤쪽 항과 겹쳐놓는 '당파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60년대 초의 <산문시대>를 수원지로 해서 <사계> <68문학> <문학과 지성>을 통과해온 우리 문단의 한 흐름 위에 실려 있다는 판단은 정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히 '과학 세대'라고 불리는 80년대 비평가이고, 그의 과학 침례는 그로 하여금 한국의 근·현대사를 독점자본주의의 종속적 재생산 과정으로 파악하는 우리 시대 좌파 사회과학자의 견해에 동의([80년대의 시 생산], 1987)하도록 만든다. 그러니까 그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민족·민중문학권의 주류 이론가들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의기투합이 문학관이나 한국 사회에 대한 처방의 영역에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비평은 무엇보다도 결정론의 대척점에 서 있다. "인간의 모든 삶이 입자이며 동시에 파동인 물질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 선다면, 결정은 잠정적인 현상일 뿐, 실제 일어나는 것은, 상호침투이고 상호해체이며 상호재구성"([역결정의 논리], 1988)이라는 것을 그가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에 가까운 것은 '내적 관계 속의 자율성'이라는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그가 초기 글에서부터 관심을 가져왔고 최근 들어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문학의 해체 작용이다. 그의 생각으로 문학은, 사실은 좋은 문학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생성되어 나와 이데올로기를 해체한다. 문학이 해체하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해내는 언어의 체계이다. 그럼으로써 삶의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망을 풀면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전범이 되는 것은 이인성이나 최수철의 소설이다.
해체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욱 실용적으로 표출된 것은, 민중문학론이 지배체제의 상징적 질서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닌 상징적 관념의 질서를 수립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한 [민중문학론의 인식구조](1988)에서이다. 80년대에 생산된 가장 중요한 비평문헌의 하나로 기록됨직한 이 글에서 그는 민중문학론이 지식, 언어가 중립적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며, 민중문학론자들이 정말 문학운동에 복무하기를 원한다면 지식 자체의 해체·재구성을 통해 그들의 지식이 갖는 이데올로기성을 걸러내면서 그것이 소외를 앓고 있는 집단들의 자기동일성의 확립에 적절한 형식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모색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민중의 주체성 회복 못지 않게 실제적인 세계관(존재양식)의 모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되풀이 강조하며 여러 분파의 민중문학론을 꼼꼼히 해부하고 있는 이 글의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인 계급모순과 일제에 의해 시작돼 분단에 의해 내면화된 민족모순 외에, 분단에 의해 시작돼 80년대의 강력한 국가이데올로기 체제에 의해 실제적으로 형성된 제도관리의 모순(지배이데올로기 체계와, 그것으로 환원되기를 강요받으면서 환원되지 않는 부분을 남기는 다른 삶의 체계들 사이의 모순)을 중시하는 정씨의 관점이 깔려 있다. 그러니만큼 그가 기획하고 있는 변혁은 보다 전면적이고, 보다 근본적이다.
번역문투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작가·작품과 한 몸이 되어 텍스트의 울림을 여러 겹으로 증폭시키는, 섬세하고 화려한, 그래서 때로는 일종의 에로티시즘을 빚어내는 문체 또한 정과리 비평의 개성으로 꼽힌다. (92.1.5.:고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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